정완 경희대 법전원 교수 겸 사이버범죄연구센터장 "현행법에는 처벌 규정조차 없어…형량 높게 새 조항이라도 만들어야"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1. 최근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거에 찍은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할 것처럼 협박한 20대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단독 이광헌 판사는 14일 협박 혐의로 기소된 강모(26)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 이에 앞서 인터넷에서 연인이 과거 다른 남성과 성관계하는 영상을 보고 말다툼 끝에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A(47)씨가 징역 15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해당 동영상이 어떻게 촬영되고, 유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영상 때문에 수차례 갈등을 빚은 끝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이에 대해 정완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겸 사이버범죄연구센터장은 “리벤지 포르노는 애초에 찍지 말아야 할 영상”이라며 “순간은 잘못된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를 만나 최근 심각한 사이버 범죄로 대두되고 있는 ‘리벤지 포르노’의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리벤지 포르노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리벤지 포르노라는 용어가 적합한 표현인가?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보복성 음란물이라고 풀이된다. 보복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이라고 명시돼 있다. 반면, 리벤지 포르노는 사이가 좋았던 사람, 즉 연인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죽어봐라’ 하는 심정에 유포하는 것인데 그걸 보복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리벤지 포르노라는 용어 자체가 영어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고, 우리나라 역시 그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다른 단어를 찾거나 논의할 시간도 이미 지나가 버리지 않았겠나. 단, 법률 제정 등이 이뤄질 경우에는 외래어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대체 용어를 찾아야 할 것이다. 여러 면에서 연구가 좀 필요한 용어인 것 같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언제인가?
10년이 채 안 됐다. 언론 등에서 리벤지 포르노를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은 2~3년 이내의 일이다. 최근 가수 구하라씨 사건으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데, 이로 인해 언론은 물론 국회에서도 관련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상태로 알고 있다.
과거 B양 비디오, O양 비디오 등 연예인들의 성관계 영상이 유출돼 파장이 컸었다. 그런 것들은 리벤지 포르노로 볼 수 없나?
그것도 엄연히 보면 리벤지 포르노인데. 그 때는 용어가 없었다. 당시에도 유포자들을 향한 사회의 비판이 컸었는데, 이전까지 그런 유형의 범죄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 입법을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최근 들어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리벤지 포르노까지 증가하면서 입법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리벤지 포르노가 늘어난 것일까, 아니면 정보 매체의 발달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진 것인가?
아마 절대적인 범죄 숫자는 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 경찰력이 늘어나고 정보 기술의 발달로 수사 기법도 다양해지면서 적발하는 건수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전체적인 발생 건수는 비슷할 것이다. 리벤지 포르노는 이미 세계적으로는 일반적인 범죄이고, 우리나라에서 유독 늦게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는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인격을 말살시키는 무시무시한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8%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고 있다. 사실상 처벌을 안 한다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새 법을 만들거나 기존 법을 개정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법률 재정비 없이는 리벤지 포르노의 무분별한 양산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법률 재정비를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는?
현재 형법에는 리벤지 포르노라는 범죄 자체가 없다. 그나마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가운데 제14조의 몰래카메라 관련 내용이다. 근데 문제는 리벤지 포르노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1항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벌을 할 규정 자체가 없다는 말로 들린다.
결국 ‘촬영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2항을 적용해야 하는데, 여기서 오히려 형량이 줄어드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대부분 리벤지 포르노가 촬영 당시에는 연인 또는 부부 간에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촬영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개선안을 제시하자면.
- 현 상황에서 리벤지 포르노 가해자들에 대해 법원이 적용하는 법률은 ‘음란물’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유포시킨 것에만 국한돼 있다. 여기서 정의하는 ‘음란물’은 몰래카메라를 포함한 각종 영상들을 포괄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몰래카메라와 성관계 동영상을 같은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 성관계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동영상을 유포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해악이다. 3년 이하의 형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못해도 7~10년까지는 늘려야 한다고 본다. 필요하다면 별도 조항을 만들어서라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법률 정비가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까?
물론 장담할 수 없다. 살인죄 형량을 높인다고 줄어들지 예상할 수 없지 않은가. 다만, 법률 재정비를 통해 형량을 높인다면 그런 행위에 대한 조심성이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하는 말이다. 현격한 차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아무리 형벌을 강화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법률 재정비는 필요하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이다.
무분별하게 범죄가 행해지고 있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극명하진 않더라도 분명히 변화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 구조적 문제를 떠나 개개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카메라나 인터넷 등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데, 그에 대한 의식 수준은 발전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 아쉽다. 리벤지 포르노 영상들을 보면 자신 신체의 은밀한 부위도 막 찍고 하는데, 그걸 찍는 의도 자체를 모르겠다. 음란물을 제작해서 판매할 것도 아닌데, 설마 하는 의심조차도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찍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그래 놓고는 보관도 아무렇게나 한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을 수 있는 영상인데, 신경을 끄고 있다가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영상은 애초에 안 찍어야 한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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