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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훈의 돛단Book]30년간 사이 나빴던 친구와 화해하는 법

최종수정 2018.10.12 11:30 기사입력 2018.10.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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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만에 재출간된 책 '적과의 대화'

미국-베트남 관계자들 모여 과거 전쟁 복기
전쟁 중단 기회 놓친 이유 주제로 날선 논쟁
3박4일간 토론의 교훈 '끝없는 대화 필요해'
세계적인 포크 가수이자 반전 운동가 존 바에즈는 1972년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미국과 분쟁 중이던 동남아시아 국가를 돌며 전 세계를 상대로 반전 메시지를 전파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의도와는 반대로 미국은 1972년 12월18일부터 12일간 하노이와 주변 지역을 상대로 이른바 '크리스마스 폭격(작전명 '라인 브레이커')'을 감행했다. 꿈쩍 않고 버티는 베트남을 협상 테이블까지 끌어오기 위한 겁 주기 전략이었다. 바에즈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신이 묵던 호텔에서 나와 '통붘호텔'의 방공호로 대피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겁에 질린 피난민들과 함께 '우리는 승리할 거라네(We shall overcome)'라는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생존과 평화를 기원하는 고대 제사장의 주문처럼 노래는 어두운 방공호 안에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 폭격에서 미군은 약 4만t의 폭탄을 퍼부었지만 땅굴 생활이 일상화된 베트남인들에게 별 피해를 주진 못했다. 사상자는 1300여명에 불과했다. 1년 후 미국은 파리 평화 협상을 통해 현지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결의했다.

크리스마스 폭격이 있었던 해로부터 25년이 지난 1997년, 존 바에즈가 피신했던 호텔에서는 그간 상상할 수도 없었던 만남이 성사됐다. '메트로폴 호텔'로 이름을 바꾼 이곳에서 베트남전을 이끌었던 미국과 베트남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대화의 장을 연 것이다. 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 북베트남의 외무부 차관이자 미국과의 비밀 협상 사령탑을 맡았던 응우옌꼬탁이 양측의 대표로 나섰다. 이 밖에 군사ㆍ외교 담당자와 역사학자 등이 각 13명씩 참여해 3박4일간의 대화를 시작했다. 모임의 타이틀은 '기회를 놓쳤는가?(Missed Opportunities?)'로 정했다. 말 그대로 베트남 국민 300만명, 미군 5만8000명(각 정부 추산)의 생명을 앗아간 전쟁을 도중에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진 않았는지 되새겨보는 자리였다.

최근 14년 만에 국내서 재출간된 '적과의 대화'는 일본 NHK 에디터 출신의 국제 관계 전문가 히가시 다이사쿠(현 日 조치대 교수)가 '기회를 놓쳤는가?'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1998년 다이사쿠는 이때의 만남을 소재로 전쟁 특집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 베트남 전쟁ㆍ적과의 대화'를 제작했다. 저자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모은 대화 기록과 참여했던 인물들의 인터뷰, 막전막후의 숨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대화의 시작은 그리 매끄럽지 않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는 여전했다. 미국 측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점차 확산하는 '도미노 이론'에 공포감을 느꼈기에 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베트남 측은 공산주의가 서방 세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의 연장선이었을 뿐 공산주의 자체의 확대를 위한 싸움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양국 간 비밀 평화 협상이 결렬된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바가 서로 너무나 달랐다. 베트남 측은 "북베트남에 폭탄을 쏟아부으면서 한편으론 (비밀 협상) 대화를 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미국 측은 "북폭의 계기는 북베트남의 선공격 때문이었고, 본국에 폭격을 중단할 것을 거듭 제안했다"며 "베트남이 협상에 비협조적이라 폭격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양측은 '베트남이 어느 이념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 국가로 남았다면' 혹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 양국 간 비밀 평화 협상이 제대로 진행됐으면 어땠을까' 등 전쟁의 장기화를 막을 수도 있었던 과거의 기회들을 복기한다. 그 결과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모자랐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밀 협상에 깊이 관여했던 모임 참석자 체스터 쿠퍼는 "나는 중국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2차 대전 때 병사로 중국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사이엔가 아시아 전문가로 간주됐다"며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가 실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음을 고백했다.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 모든 갈등의 원인이 자신의 무지와 억측이었다는 반전이 기다린다.

1967년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 앞에 설치된 지하 방공호에 주민들이 숨어 사태를 주시하는 모습.(VN익스프레스 캡처)

1967년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 앞에 설치된 지하 방공호에 주민들이 숨어 사태를 주시하는 모습.(VN익스프레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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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들의 대화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특히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해 커다란 교훈과 시사점을 제시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대화에선 현재 북ㆍ미 간 비핵화 협상과 비슷한 점이 보인다. 북한과 베트남은 미국식 도미노 이론에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다.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독립을 전후해 이념 전쟁에 휘말린 약소국으로서, 줄곧 '적'이었던 미국과 대화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국의 경제적 발전이 과거의 갈등에 우선하는 때다. 이 책에서도 베트남이 미국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자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한 외무부의 의도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미국으로부터 최혜국 대우를 받아내는 것을 포함해 미국과 베트남의 경제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전략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서 얻어내려는 것도 다르지 않다. 공감대가 있는 만큼 참고할 점도 분명해 보인다. 책에 묘사된 맥나마라의 열린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기회를 놓쳤는가?' 모임 직전 그는 베트남전 당시 최고사령관이었던 보응우옌잡을 만났다. 형식적인 대화가 오가다 만남이 파할 때쯤 맥나마라는 수십 년간 풀리지 않던 의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보응우옌잡에게 '통킹만 사건(베트남이 미 구축함 매독스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미군이 반격에 나선 사건으로 베트남전이 본격화한 계기)' 당시 베트남이 정말 미국을 공격했는지를 물었다. 보응우옌잡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답했다. 맥나마라는 후에 '회고록'의 개정판을 내며 통킹만 사건에 대한 보응우옌잡의 대답을 더했다. 베트남 측의 증언을 역사적 사실로 존중한다는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맥나마라는 모임이 끝나고 진행된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전은 지도자들이 현명하게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며 "적을 이해하며 최고 지도자끼리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게을리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맥나마라와 보응우옌잡이 오늘날의 북ㆍ미 간 대화를 본다면 같은 조언을 하지 않을까.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라, 그것만이 국민과 나라가 살 길이다."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원더박스/1만5000원)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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