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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윤석남', 10월 14일까지 학고재 전시

윤석남 '자화상'. [사진=학고재]

윤석남 '자화상'. [사진=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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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서재로 보이는 공간에 백발의 한 여인이 앉아있다. 한 쪽 옆에는 읽다 만 책과 방금 전까지 사용한 안경이 놓여있다. 위 쪽 책장의 정돈된 모습과 달리 아래 쪽에는 책들이 뒤엉켜 있다. 핑크색 스카프를 한 여인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작가 윤석남(79)의 '자화상'(2017)이다. 학고재는 오는 10월 14일까지 윤석남 개인전 '윤석남'을 연다. 그는 지난 40여 년 동안 아시아 페미니즘의 대모로서 평등 사회를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온 작가다. 199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특별전과 2014년 광주비엔날레 등 주요 전시에 참여했다. 이중섭미술상과 김세중 조각상을 받았다. 최근 테이트 컬렉션에서 작품을 소장하며 국제적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윤석남은 '자화상'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초상화의 비밀' 전시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을 본 후 얼굴을 그리고 싶었다"며 "일주일에 두세 번씩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용산에 갔어요"라고 했다. 그는 "나는 누군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지 등의 질문을 하다보니까 내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진=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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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윤석남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작가 활동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전시회를 한다. 그는 여든이 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작업 뒤에 서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자 여성 그 자체로 작업 속에 나타나려고 시도했고 이를 처음 선보이려고 했다.

윤석남은 지금까지 주로 '어머니'라는 주제로 여성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그는 1982년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여성의 강인함에 천착해왔다. 여리고, 버림받은 것을 품을 줄 아는 여성의 힘을 모성에 주목해 풀어냈다. 역사적 여성은 물론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 등을 주제로 삼았다. 물론 이번 전시회에서도 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2003년부터 역사 속의 여성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허난설헌, 나혜석, 김만덕 등 여성이 지고 있던 사회적 제약과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인물들이다.
"자신은 없지만, 초상화 연작을 계속하고 싶어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인 여성 노동자 강주룡 이야기에 요즘 끌리네요."

윤석남 '이매창'. [사진=학고재]

윤석남 '이매창'. [사진=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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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 나온 그림 '이매창'(2018)도 눈에 띈다. 검은 바탕 속 한복차림 여인의 대담한 눈빛이 강렬하다. 앞서 소개한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는 "내 얼굴은 보기 싫어도 괜찮아서 자유롭게 그린다"며 "초상화에 익숙해지면 역사 속에서 스러져간 한국 여성들의 혼을 끌어내고 싶은데 아직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윤석남은 이매창의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시와 노래에 능했던 조선의 기생 이매창은 당대 성차별적인 사회 제도와 사상 때문에 뜻을 펼치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재능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2015 SeMA Green : 윤석남ㆍ심장' 전시에서 이매창과 손을 마주하는 '종소리'(2002)를 선보였다. 설치를 선보였던 그때와는 다르게 한지 위에 곱게 분채를 쌓아 이매창의 모습을 담았다.

그는 불혹의 나이에 붓을 잡았다. 이후 여성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와 한계를 갖고 있는지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한 가정에서 시어머니를 모시는 주부로서, 남편의 아내로서, 딸을 둔 어머니로서 한계를 느끼던 시기였다. 미술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시인 박두진에게 서예를 배웠고 이어서 이종무 화백의 개인 화실에서 드로잉과 회화 교습을 받았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가정이라는 테두리에 묶여 갈등을 겪던 마음이 치유됐다. 어머니를 모델로 2년 동안 준비한 끝에 1982년 문예진흥원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 버전의 '핑크룸 V'를 포함한 대형 설치 작품 두 점도 선보인다. '핑크룸 V'는 '핑크룸'의 2018년 버전으로 학고재 신관 지하 2층 공간에 맞춰 새롭게 설치한다. 윤석남은 핑크를 강요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에 맞서는 일종의 사회적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담았다고 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50세가 넘으면서 '이제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만든 첫 설치 작품이다. 형광 핑크빛 구슬로 가득 채운 전시장 바닥에 뾰족한 갈고리를 단 소파가 놓여 있다.

"형광 핑크는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날카로운 색깔이에요. 먹고사는 게 해결된 중산층인데도 쓰러질 것처럼 불안한 나의 내면을 형상화했죠. 아닌 척하면서 살아가는 온갖 삶의 모습이 다 들어가 있어요."

윤석남은 오는 11월 스미소니언에서 열리는 단체전에 참여한다. 2019년에는 아트바젤 홍콩에서 대형 설치 작품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를 선보일 계획이다.




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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