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상피제 도입' 의지에도 현실적으론 사립에 강제 불가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현직 보직교사의 쌍둥이 두 딸이 전교 1등을 하면서 불거졌던 서울 강남의 S고등학교의 시험문제 유출 의혹이 교육청 감사 결과 '개연성 있다'로 결론났다. 교육청이 의혹을 명백히 해소하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학교 측의 미온적인 해명과 '상피제 도입'에 대한 교육당국의 엇박자가 더해지면서 학부모들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S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학부모들이 촛불을 든 채 '보직교사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제기한 의혹, 사실로 드러나기까지=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S고와 관련된 첫 민원이 제기된 것은 지난 7월24일. 현직 교무부장의 자녀인 2학년 쌍둥이 여학생이 1학기에 각각 문과와 이과 전교 1등을 했는데, 학생과 학부모인 교사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냐는 질의에 교육청은 S고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그리고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인 교사가 고사를 관리하는 교무부장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미 학교 안팎으로 쌍둥이 여학생들의 성적과 관련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던 터라 당사자인 교무부장 A교사는 학교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해 "두 딸이 하루 4시간도 못 자며 공부해 차근차근 성적을 올려 왔다"고 해명했다. A교사가 사전에 시험지를 봤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업무상 오픈된 교무실에서 ‘이원목적분류표(문항의 출제 의도와 배점·정답이 적혀있는 표)’를 1분 정도 결재를 위해 보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구체적인 과목, 문제의 유형, 그리고 정답이 오류가 있어 정정됐던 사실 등을 거론하며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이같은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나서야 서울시교육청은 8월13일 교육지원청과 함께 ‘특별장학’을 벌였고,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쟁점 사안들을 확인한 후 하루 만에 이를 '감사'로 전환했다.
특히 A교사가 2016년 교무부장을 맡으면서 두 딸이 자기 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다고 알렸으나 학교 측은 ‘관행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앞서 이 학교의 한 교감도 재직 기간 중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녔고, 자녀가 속한 학년의 시험지와 답안지를 관리하는 최종 결재라인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A교사는 또 당초 해명과 달리 ‘고사 담당교사가 수업 등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에도 교무실에서 단독으로 고사 서류를 검토하거나 결재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교육청 감사팀은 "고교 학업성적관리지침은 학교에 교원 자녀가 재학할 때 자녀가 속한 학년의 정기고사 문항 출제 및 검토에서 관련교원을 배제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S고는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S고에서 지난해와 올해 중간·기말고사 시험을 치른 후 정답이 정정된 문제는 총 11개였는데, 이 중 자매가 ‘정정되기 전 정답’을 적어냈다가 정답이 바뀌면서 틀린 것으로 처리된 문항은 9개였다. 감사팀 관계자는 "1학기 기말고사 화학 과목의 서술형 문제는 (쌍둥이 중 이과) 학생의 답안과 정정전 정답이 유사하게 나올 수 없는 성격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쌍둥이 학생은 또 기말고사에서 나란히 전교 1등을 했고, 이 때 전교 2등과의 점수가 평균 2.6점, 1.9점씩 차이가 나 전교 2~10등 학생들의 점수 차와 비교할 때 상당히 월등했다.
다만 세간의 의혹과 달리, 두 여학생은 학교시험 외에 지난 3월과 6월 모의고사를 모두 치른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학교 수행평가 역시 과목별로 전체 학생들의 78~90%가 만점을 받아 이들이 교사 자녀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민종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시험문제) 유출 정황은 있으나 (A씨 등) 당사자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물증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민종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오른쪽)과 강연홍 중등교육과장이 2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된 서울 강남구 S고등학교 특별감사결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밝히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상피제 도입’ 선언한 교육부, 곤란하다는 교육청= S고에 대한 특별장학이 진행중이던 지난 달 17일,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고교 자녀와 학부모인 교사가 한 학교에 배정되지 않도록 하는 ‘상피제(相避制)’를 적용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여론의 집중 관심을 받고 있는 S고 사태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매번 공정성과 신뢰성 논란이 있는 학교생활기록부 전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질까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교육부가 파악한 바로는 전국 고등학교 2360개 중 560개교, 23.7%에 해당하는 학교에서 학생이 부모가 교사로 근무하는 학교에 재학중이다. 교원 수는 1005명, 교원 자녀는 1050명에 이른다.
하지만 S고를 감사한 서울교육청부터 당장 난색을 표하고 나섰다. 현행 고교 배정원칙이 있는데 부모가 그 학교에 재직한다는 이유로 학생의 지원 자체를 강제로 막을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단지 학생과 그 부모인 교사가 자발적으로 같은 학교에 배정되는 것을 피하도록 ‘신청’하거나 전학이 가능하도록 해 주겠다는 게 교육청의 입장이다. 더욱이 사립학교의 경우 교사의 전보 문제 등이 매우 제한적이고,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교육부나 교육청 지침을 강제하거나 제재 조치를 내리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강연홍 서울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은 "부모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학생이 들어가게 될 경우 그 학교는 별도의 시스템으로 관리해 성적 관리에 허점이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수사 결과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학부모들= 서울교육청은 감사 결과에 따라 S고 교장과 교감, 교무부장 A교사에게는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고사 담당교사에게는 견책 수준의 경징계를 내릴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장은 지난달 정년퇴임해 퇴직불문 처리(퇴직으로 인한 징계 무효)될 가능성이 높고, 다른 교직원 역시 S고가 속한 재단에서 이사회 등을 통해 최종 처분을 결정하게 된다.
S고는 입장문을 통해 "그간 자녀와 같이 근무하는 교사를 자녀의 학년 정기고사 문제 출제·검토에서 배제했으나 결재라인에서 배제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교육청 감사결과와 이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잘못된 부분은 이의신청과 정정보도요청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교육청 감사팀 관계자는 "감사는 당연히 처분에 이의가 있으면 30일 이내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고, 별도의 감사처분심의위원회에서 검토하게 된다"며 "하지만 현재로선 감사 결과와 처분을 번복할 만한 다른 요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교육청은 지난달 30일 서울지방경찰청에 S고에 대한 수사협조 의뢰를 정식으로 접수했다. 경찰 역시 사안의 중대성과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 이 사건을 경찰청 본청에서 맡을지, 관할서인 수서경찰서에서 전담할지 고심중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이날 저녁부터 S고 앞에 모여 학교 정문에 흰 리본을 묶고 촛불을 든 채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30일에만 100여명, 주말인 31일과 9월1일에는 60여명이 나와 ‘내신비리 즉각 중징계’, ‘성적 무효 처리’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학부모들은 당분간 매일 저녁 시위에 나설 계획이다.
현장에 나온 한 학부모는 "신분 노출이 걱정돼 마스크를 쓸 수 밖에 없지만 내 아이가 정직하게 배우고, 공정하게 평가받길 원하는 건 모두 같은 마음"이라며 "이젠 우리 학부모 뿐 아니라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학교와 교육당국은 명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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