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내건 상법개정안 통과되면, 해외 투기 세력 놀이터 될 것"
다중대표소송제, 투기세력 놀이터 될 것
사람 중심 규제서 시스템 중심 규제로 변화 필요
[아시아경제 안하늘 기자] 정부·여당이 경제민주화 일환으로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오히려 우리나라가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일찍부터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그룹의 경우 (주)LG 주식 1주(6만9900원, 8월22일 종가)만 가지고 있어도 LG전자 등 계열사 전반에 다중 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 돼 있는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해 20년을 내다보는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 선진국에서 이미 도입 중인 경영권 방어 제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23일 국회와 경영계에 따르면 현재 발의된 상법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다중대표 소송 ▲전자투표 의무화(셰도보팅) ▲감사위원 분리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주주총회 결의 요건 완화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등이다.
◆다중대표소송 도입되면 투기자본 판친다 = 다중대표소송제란 모 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혹은 손자 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낼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모회사가 자회사를 100% 소유할 경우 자회사에서는 주주가 없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영진에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제기된 제도다. 법무부는 자회사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모회사 주주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곽관훈 선문대 교수는 이날 국회서 열린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개정안의 주요 쟁점과 과제' 국회 정책세미나에서 "우리 법체계에서는 모회사의 경영진의 경우 최대의 이익을 고려할 대상은 모회사이다. 자회사의 이익을 고려하는 결정을 할 경우 배임이 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다중 대표 소송이 도입될 경우 책임 추궁 문제에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상무는 "개정안 다수를 보면 다중대표소송 제기할 수 있는 기준 제한이 매우 낮다"며 "투기 목적 해지펀드가 주식을 저가에 매수한 후 다중대표소송제기하면 막대한 시세차익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한경연의 분석에 따르면 LG그룹에 대한 다중 대표 소송 요건으로 오신환, 이종걸, 김종인 의원의 안에서는 12억6000만원(LG 시가총액 12.6조원 * 0.01%), 채이배 의원 안의 경우 1억2600만원(LG 시가총액 12.6조 * 0.001%)에 그친다. 노회찬 의원은 1주만 보유할 경우 가능해 6만9900원(LG 주가, 8월13일 기준)이면 다중 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사람 중심 규제서 시스템 중심 규제로 =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크다고 분석했다. 집중 투표제란 이사 선임시 1주당 1의결권 원칙의 예외 조항으로, 의결권 집중을 통해 소액주주가 추천한 이사를 더 쉽게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곽관훈 교수는 "두 제도의 기본 철학은 소수 주주 대표하는 경영진을 선임한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 상법에서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돼 있다. 소수 주주 이익과 회사 이익 상충될 경우 집중 투표로 선출된 임원의 역할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현행 이사들 중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방식에서 애초에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현행 상법에서는 이사 선임의 경우 3%룰(지배주주가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최대 3%만 행사)이 적용되지 않는 반면 감사위원 선임의 경우 3%룰이 적용되기 때문에 나온 규제다. 대주주의 입김이 반영된 이사회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구조상 감사위원회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곽 교수는 "집중 투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모두 독립적인 사람들어가면 바뀔 것이란 생각에서 나온 제도"라면서 "하지만 사외이사 제도를 통해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 가졌는지 의문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사람 중심의 규제에서 시스템 중심 규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미국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정 전무는 "회사가 거대화, 조직화, 관료화가 되면서 범죄행위는 발생했는데 범죄자를 찾기가 어렵게 됐다"며 "미국은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들에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지시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할 경우 문제 발생 시 책임을 감경하는 인센티브를 줘 제도를 정착시켰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준법감시인 등의 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를 구축할 경우 제공되는 인센티브가 빠져 경영계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고 있다.
◆섀도보팅 폐지 따라 기업 10%는 감사 선임 어려울 듯 = 지난해 말 섀도보팅까지 폐지되면서 올 상반기 76개 기업이 감사 선임을 못하거나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현행법에서는 보통 결의의 경우 발행 주식 총수의 1/4, 출석 주식 수 과반수 찬성, 특별 결의는 발행 주식 총수 1/3, 출석 주식 수의 2/3 찬성의 제한이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앞으로도 감사나 감사 위원 설립이 곤란할 회사로 내년에는 209개(11.6%), 2020년 232개(12.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에서는 전자투표 의무화를 통해 주총 활성화를 예상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자투표 의무화의 효과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소액 주주들은 기업의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소액 주주 평균 조식보유기간은 코스피의 경우 7.2개월, 코스닥은 3.1개월에 불과하다. 상장회사의 정기주주총회 전자 투표 행사 비율도 주식수 기준 2015년 1.62%, 2016년 1.44%, 2017년 2.1%, 2018년 3월 3.96%에 그친다.
반면 해킹 등의 위험은 상존한다. 2016년 싱가포르 지하철공사 SMAT가 전자투표 이용 중 특정안건의 찬성표만 등록되고 반도표는 거부되는 오류도 발생한 바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주요 국 전자 투표 오류 현황에 따르면 2012년 8건, 2013년 8710건, 2014년 4만1733건, 2015년 2만2796건, 2016년 6580건으로 5년간 8만이나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주주 총회 결의 요건이 완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현행법에서는 보통 결의의 경우 발행 주식 총수의 1/4, 출석 주식 수 과반수 찬성, 특별 결의는 발행 주식 총수 1/3, 출석 주식 수의 2/3 찬성의 제한이 있다.
곽 교수는 "회사도 부담이고 소액주주들도 자기들만으로도 결의 하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섀도보팅까지 폐지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감사 선임을 못해 자동적으로 불법적 상황까지 내몰린 만큼 결의 요건 완화에 긍정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혁명 위해선 경영권 방어 필요 = 이와 함께 기업들이 새로운 영역에 적극 도전하기 위해서는 상법 상 경영권 방어수단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유환익 상무는 "상당수의 벤처기업, 스타트업이 어느 순간 자금 수혈 필요한데 경영권 인수 우려한 나머지 수혈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IT 기업 대부분 차등 의결권을 채택하고 있으며, 유니콘 기업들도 이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등의결권이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여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를 말한다.
실제 구글의 경우 약 15% 주식 보유하고 있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63.5% 의결권 부여했다. 현재 구글은 창업자 2명 비롯한 주요 경영진 4명이 의결권의 58.2% 보유하면서 안정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미국 스냅사는 상장시 아예 무 의결권 주식 발행, 공모에 성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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