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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미제사건 해결사 국과수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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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의 마지막 말 듣고 억울한 죽음 없게 하는 일”
장기미제사건, DNA 앞에 사건 실마리 나와
강호순·정남규·유영철 사건 등 사건 실마리 제공
디지털 포렌식 분석 기법은 세계 최고 수준
서울대공원 토막 시신 정밀 검정 중, 앞서 전남 강진 여고생 부검도

지난6월24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 한 야산에서 경찰이 8일 전 실종된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수습해 운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6월24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 한 야산에서 경찰이 8일 전 실종된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수습해 운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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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그래, 내가 죽였다, 내가 다 죽였다, 이 말이 듣고 싶은 거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박현규(박해일)가 자신을 붙잡은 형사 박두만(송강호)에게 내 뱉은 말이다. 극 중 박두만은 박현규를 미치도록 잡고 싶었지만, 증거가 없어 박현규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날아온 박현규의 유전자감식 결과도 박두만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당시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은 지금의 과학수사기법이 있었다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탄식을 내뱉곤 했다. 실제로 과학수사는 수많은 미제 사건을 해결했다. 이 중심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자리하고 있다.

과수는 1955년 3월25일 발족했다. 국과수가 발간한 ‘과학수사50년사’를 보면 당시 국과수는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각종 범죄가 다양하게 나타남에 따라 어느 때보다 사건해결을 위한 수사의 과학화와 전문화가 절실하게 요구됨에 따라 생겨났다.

1980년대 경제가 고속 성장을 거듭하면서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가 잇따랐다. 원효로 윤노파 사건, 삼성동 여대생 피살사건, 우순경 사건, 서진룸싸롱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초동 수사 미비로 인한 증거물 부족 상황과 지능화·흉포화하는 강력범죄 사건이 맞물리면서 영구미제사건도 많이 생겨났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가 지속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법원에서도 유력한 용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국과수는 과학수사기법의 발달로 미제사건 해결은 물론 초동 수사 상황에서 사실상 꼭 거쳐야 하는 수사 절차로 자리매김했다. 국과수는 지난 2016년 5월9일부터 ‘장기 미제 강력사건 지원팀’을 구성해 전국 17개 지방경찰청과 업무 협의를 통해 DNA(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DNA·생물의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물질) 수사정보 제공 및 신속하고 정확한 감정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국과수는 △법유전자과 △법독성학과 △법화학과 △법안전과 △디지털분석과 △교통사고분석과 △법심리과 △중앙법의학센터로 구성, 사건 해결의 열쇠를 찾고 있다.

이 같은 과학수사 기법으로 국과수는 2000년대 들어서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부산여중생 살인사건(김길태),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정남규),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당시 국과수는 심하게 훼손된 시신의 신원을 파악했다. 강호순 사건의 경우 당시 20대 여성을 살인한 용의자로 검거됐지만, 그의 차에서 발견된 점퍼에 묻은 혈흔을 감정한 결과 1년 전 실종된 여성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8건의 연쇄살인 사실을 자백받았다.

서울 노원 아파트 살인사건 18년 전 공개수배 사진.사진=연합뉴스

서울 노원 아파트 살인사건 18년 전 공개수배 사진.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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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만에 범인 검거…용의자 최후진술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이 가운데 장기미제사건을 기준으로 살인의 경우 100여건, 성폭행의 경우 40여건에 대한 과거 DNA 증거에 신기술을 적용해 재분석을 완료해 범인 검거에 일조했다.

DNA 재분석으로 해결된 사건은 18년만에 범인을 붙잡은 ‘서울 노원 문○○ 살인사건’, DNA 재분석 결과와 강력사건 범죄자의 DNA 데이터베이스(DB)를 비교해 용의자를 특정한 ‘서울 대치동 유○○ 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 밖에 ‘서울 가리봉동 윤○○ 살인사건‘, ’충남 아산 갱티고개 한○○살인사건‘, ‘전북 인천지역 살인사건‘ 등 다수의 미제 살인사건 해결에도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이 중 ‘서울 노원 문○○ 살인사건’은 1998년 10월2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 살던 주부(당시 34살)가 성폭행당한 뒤 두 팔이 묶인 채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으로, 미궁에 빠졌다가 사건 당일 18년 후인 2016년 11월에 범인이 검거된 사건을 말한다.

사건 당시 범인은 20대 남성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이 가운데 1965~1975년생을 기준으로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 8000여 명을 간추렸다. 이후 혈액형을 다시 분류하니 125명이 남았다. 이어 이들의 얼굴 사진을 현금인출기 폐쇄회로(CC)TV에 찍힌 사진과 하나하나 대조했다.

그 안에 동일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쫓아 그가 버린 물품을 수거한 다음 국과수에 DNA 분석을 요청했다. 이 DNA는 사건 당시 확보한 DNA와 일치했다. 마침내 경찰은 잠복 끝에 경기도 양주에서 유력한 용의자 A 씨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사건 발생 18년만에 일이었다.

일명 ‘가리봉동 호프집 여주인 살인’도 마찬가지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2002년 12월14일 새벽 1시30분께 서울 구로구의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을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몽타주를 만들어 공개 수배했으나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다. 현장 주변에는 CCTV도 없었다.

그러던 중 2015년 8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도록 개정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돼 2016년 1월 재수사를 시작했다.

이후 경찰은 당시 사건 현장에서 맥주병에 남은 쪽지문(조각지문)을 사건 발생 당시에는 없었던 과학수사 기법으로 분석해 B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지난해 6월 검거했다. 검거 직후 B씨는 범행사실 일체를 인정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B 씨는 최후진술을 통해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며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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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의 디지털 포렌식 분석 기법…다른 나라로 기술 전수도

국과수의 과학수사 기법의 발달로 미제사건이 해결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분석기법도 사건 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은 PC,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저장매체 또는 인터넷상에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일종의 ‘디지털 흔적’을 분석하는 수사기법인 셈이다.

지난 6월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7년 동안 디지털 포렌식이 필요한 사건은 6배 가까이 증가했다. 연도별 디지털 포렌식 분석 추이를 보면 2009년 5493건에서 2010년 6247건, 2011년 7388건, 2012년 1만426건, 2013년 1만1200건, 2014년 1만4899건, 2015년 2만4295건, 2016년 3만2281건으로 7년 사이 5.9배(2만6788건) 증가했다.

최근 디지털 포렌식 분석 기법이 투입된 사건은 인터넷 기사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인 ‘드루킹’ 사건이다. 이 사건에 서울지방경찰청은 하드디스크 및 휴대전화 분석 등에 서울청 소속인 분석 요원(17명) 대부분을 동원하기도 했다.

고준희(5)양의 친부가 지난1월 4일 전북 군산시 내초동 한 야산에서 열린 현장검증에서 준희 양의 시신을 대신해 인형을 묻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고준희(5)양의 친부가 지난1월 4일 전북 군산시 내초동 한 야산에서 열린 현장검증에서 준희 양의 시신을 대신해 인형을 묻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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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일명 ‘준희양 유기 사건’ 역시 이 분석 기법으로 사건의 용의자를 좁혔다. 당시 경찰은 이 방법을 통해 전북 전주에서 실종된 고준희(5)양 친부 휴대전화에는 딸 사진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 조사 결과 준희양 실종 전단에 쓰인 사진도 내연녀 C씨가 지난 2월 촬영한 사진을 경찰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준희양을 반년 넘게 맡아 기른 C씨 어머니 D씨의 휴대전화에도 준희양 사진은 없었다.

결국 경찰은 조사를 통해 친부 E씨와 내연녀 C씨, D씨 모두 휴대전화를 바꾼 정황을 확인했다. 당시 경찰은 이러한 정황을 통해 준희양의 정확한 실종 시점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전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갔다.

용의자를 좁힌 경찰은 지난해 1월 준희양을 폭행·학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혐의(아동학대치사, 사체유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로 E씨, C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이어 D씨도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그런가 하면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촬영(몰카) 사건 역시,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가 몰카 흔적을 삭제해도 이 기법을 통해 용의자가 그동안 몰래 촬영한 영상·사진을 확보해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의 디지털 포렌식 분석 기법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과수는 최근에는 태국 중앙법과학원(CIFS)과 법과학 교류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지태국 CIFS의 요청으로 성사됐으며 2012년 9월 이후 두 번째 협약이다.

앞서 국과수는 2017년 8월 태국 CIFS 디지털 포렌식 분야 분석관 대상 방한연수 프로그램을 3주 동안 운영해 이미지, 영상 복원, 모바일 포렌식 등 한국 최첨단 디지털증거물 분석기법을 전수한 바 있다.


19일 오전 9시 40분께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서울대공원 장미의언덕 주차장 인근 도로 주변 수풀에서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머리와 몸통 부분이 분리된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사진은 시신이 발견된 현장.사진=연합뉴스

19일 오전 9시 40분께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서울대공원 장미의언덕 주차장 인근 도로 주변 수풀에서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머리와 몸통 부분이 분리된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사진은 시신이 발견된 현장.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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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과수, 서울대공원 토막 시신 사건 정밀 부검 중…“사인 규명해 억울한 죽음 없게 하는 일”

최근 국과수는 지난 19일 오전 9시40분께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서울대공원 내부 주차장 인근 수풀에서 발견된 50대 초반 남성의 훼손된 시신에 대한 정밀검정에 들어갔다.

앞서 국과수는 이 시신 검시 결과에 대해 “정확한 사인은 목졸림 흔적이나 약독물 중독 여부 등을 정밀 검정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또 “시신의 목 부위와 다리 부위 절단 도구도 아직 명확하지 않고, 얼굴과 어깨에 있는 훼손 흔적은 사후 손상으로 보인다”라는 소견을 내놨다. 현재 국과수는 정밀검정에 들어갔으며 2주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국과수는 또 지난달 25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포구에서 가족과 캠핑 중 사라졌다가 일주일만에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 관광객에 대한 정밀 부검에 들어갔다. 앞서 국과수는 전남 강진 실종 여고생의 시신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을 검출, 이 사건이 단순 우발적 범행이 아닌 계획 범죄가 아니냐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편 국과수의 한 부검의는 시신 부검에 대해 “죽은 이의 마지막 말을 듣고 과학적으로 사인을 규명하여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는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검을 통해 유가족의 눈물을 닦고 사건 해결에도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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