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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연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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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연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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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최근 경기도 양평의 한 사찰에서 하루를 묵었다. 소위 '템플 스테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인데, 1박 2일동안 조용한 절에 머물며 예불을 드리고 건강요가나 108배 같은 체험을 하는 것이다. 평소 부처도, 예수도 찾지 않는 무교인(無敎人)인 지라 종교활동보다는 이색 휴가에 무게를 뒀다. 속세의 한가운데라 할 수 있는 '경제신문 부동산부'에서 일하며 쌓인 번뇌도 내려놓고 싶었으나, 겨우 이틀 만에 내려놔 질 번뇌가 아니기에 조용히 명상이나 하다 가자 생각했다. 더불어 평소 한몸처럼 지내던 휴대전화도 덜 보고, 새소리도 듣고.
방을 배정받고 동행인과 함께 사찰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맑고 깊은 계곡, 1100년 됐다는 은행나무, 미륵불과 대웅전을 말없이 뒷짐지고 훑어보니 번뇌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의 미세먼지 쯤은 말끔히 씻어내고 나가겠구나 싶었다.

절을 찾으면 가장 시간 들여 관찰하는 것 중 하나가 방문객들이 정성으로 쓴 기와불사나 연등불사다. 사람들의 기원은 흥미롭다. 십수년 간 관찰한 결과 과반은 '가족건강'이고 '만사형통', '학업성취', '귀인상봉' 같은 내용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과연 성인(聖人)에게 유료로 부탁할 만큼 인생사에서 중요하고도 중요한 것들이다.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소원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차분해진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몸의 독기가 빠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날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이 눈에 띄었다. 대웅전 앞마당의 한 붉은 연등에 꽤나 경건한 서체로 써내려간 '부동산 매매'. 몇 계단을 내려가 공양하는 곳 한켠에도 '주택 매매'. 그리고는 더이상 연등불사 읽기를 그만뒀다.
연등의 주인이 어떤 마음으로 부동산 매매, 주택 매매라 적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가 한 평생 집을 갖지 못해 서러움을 겪은 어느 가장인지, 갭투자로 이익을 보고 싶은 투자자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부동산을 사고파는 행위가 연등에 적힐만큼 정점에 오른 소원이라는 것, 그 하나는 알게 됐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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