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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무사 계엄문건의 본질과 기무사 개혁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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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쪽에 달하는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 대비 계획 세부자료'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 시대에, 이런 생각과 계획이 있을 수 있다니 실로 참담하고 두렵다. 문건은 위수령 발령부터 전국계엄에 이르기까지 잘 짜인, 매우 정교한 한 편의 시나리오로 완성돼있다. 계엄군 병력 투입계획과 언론 및 국회장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통제하는 단계별 대응 방안과 그에 필요한 공문서 등이 2017년을 시점으로 상세하게 기술돼있다. 어디에도 헌법적 가치, 국가와 역사에 대한 인식, 국민 주권주의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를 두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본말이 전도된 논란은 더욱 놀랍다. 문제의 핵심은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문서를 작성했는지, 계획의 구체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밝히는 데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 간의 진실공방은 비본질적이며 물타기이다. '나중에 훈련에 참고하도록 존안한 문건'이고 '계엄문건 실행회의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은 일상적 계엄 대비 계획으로 문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면죄부를 받으려는 몸부림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문건의 위법성에 있다. 대비 계획 세부자료를 보면 곳곳에 헌법적 가치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돼있다. 위수령 시행 시 병력출동 승인 권한은 군령권을 가진 합동참모본부 의장에게 있는데 육군총장 승인 후 별도의 절차를 통해 시행하겠다는 계획이 과연 정상적인가? 사전에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이를 위반하는 국회의원을 집중 검거해서 국회 계엄해제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 미달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은 또 무엇인가? 모두 위수령과 계엄령의 절차와 요건을 무시한 발상이며,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유린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군이 보수적 성향을 띤 집단임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기무사가 계엄문건을 작성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국가 위기 시에 대비해서 계엄 대비 계획을 작성하는 것이 일정 부분 군의 역할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기무사의 위법적 계엄계획은 있어서는 안 될 문건이다. 더욱이 이 계획은 기무사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 집단적으로 논의하며 작성한 것이다. 관련 부대와 실행회의를 한 적이 없으니, 실행계획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설사 윗선의 계엄 검토지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계엄불가'를 건의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계엄 시행의 적법한 과정 속에서 군의 대응계획을 기술했어야 옳다.

기무사는 오랫동안 군의 정치적 개입의 선봉에 서 왔다. 그 만큼 정치적 개입에 대한 DNA가 강한 조직이다. 이런 조직을 아직까지 유지해왔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다. 기무사 개혁의 핵심은 기무사의 해체에 있다. 실제로 기무사가 수행하는 기능은 군 내 여러 곳에 중첩돼있다. 기무사는 국방정보본부, 국군사이버사령부뿐만 아니라 헌병, 감찰, 법무 등이 수행하는 기능을 아우르면서 이를 독점해왔다. 쿠데타 방지를 명목으로 군 내 사찰과 지휘관 동향 보고를 수집해 적절한 시점에 확인 불가능한 인사자료를 활용함으로써 막강한 권력을 유지해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료는 최고 권력자에게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기무사 또한 정권의 입맛에 맞춰 정보를 가공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유형의 기무사는 선진국 어디에도 없다.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기무사를 더 이상 군에 존치하는 것은 우리의 국격에도 맞지 않는다.
기무사를 독립 외청으로 분리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바람직하지 않다. 위치만 이동하고 여전히 군 내 정보사찰을 독점함으로써 자칫 정권의 유혹에 휩쓸릴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남겨둘 수 있기에 그렇다. 기무사를 해체하고 관련 기능을 군 내 산재된 기관에 돌려줌으로써 군을 정상화해야 한다. 이것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첩경이다. 새삼 개혁의 어려움을 실감한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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