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에 대한 절차적 문제를 제대로 처리 못 한 책임을 통감하고 가장 귀한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다. 돈 많은 사람에게나 유리한 정치자금법이 청렴한 정치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말과 책임의 무게, 그 경중을 생각한다. 쓰임새가 불분명한 국회의원 특수활동비를 없애자 했고, 평생 자기 안위와 거리가 먼 삶을 사셨다. 본인이 추구한 가치에 금이 가는 걸 견디지 못하셨겠지만 실은 진보와 정의의 앞날을 위한 희생일 것이다. 아깝고 아프다. 구정물이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옳은 길을 헤쳐나갈 큰 나무를 우리는 잃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신분이나 계급 차이 없는 평등한 관계를 중시한다. 삶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므로 실수나 실패는 또 다른 배움의 기회로 인식된다. 선택이 틀렸더라도 그에 합당한 몫의 책임을 지고 다시 일어서도록 이끈다. 누구보다 청렴하고 결곡했던 정치인의 죽음은 책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정의와 진보를 추구하는 쪽의 윤리적 염결성만 우리가 너무 강조하지 않았는지, 그가 감당한 책임의 무게가 너무 크고 그 순정한 고뇌가 아프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윤리적 염결성이 시의 뼈대를 이루는 시인 윤동주의 시 '소년'의 시작 부분이다. 뚝뚝 떨어지는 것은 슬픈 가을이 아니라 우리의 귀한 생목숨이다. 해고 노동자가, 굶주린 이가, 쫓겨난 이가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최저생계에 필요한 안전망이 부재한 나라. 권력자는 수억 원을 받고도 무죄로 풀려나고 평화로운 시위를 계엄령으로 막는 끔찍한 꿈을 꾼 자들이 여전히 당당하다. 말을 뒤집고 약자를 기만하는 자들이 큰소리친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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