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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뺨치는 모사도의 세계, 北에선 '조선화법'으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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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손영기가 제작한 안악3호분 모사분[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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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안악3호분 정현웅 등 출발점…회칠 떨어져나간 흔적도 섬세한 묘사
김일성·김정은 정통성 강화 위해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 강조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고분벽화 연구에서 모사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발견 당시 선과 색채, 석실의 내부 상태 등을 보여준다. 흑백사진으로 분별하기 어려운 색의 변화 정도는 물론 벽면이 훼손된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다. 고분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회화의 한계도 극복하게 한다. 회벽면의 탈락으로 벽화가 사라지는 경우에는 원화의 가치를 대신하기도 한다. 북한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사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한국전쟁이 터져 많은 유적들이 훼손되고 관련 사진과 기록물들이 손실되자 전쟁 도중인 1952년부터 모사도를 제작했다.
시발점은 1949년 발굴된 안악3호분이다. 정현웅과 손영기가 총탄의 포화 속에서 촛불을 켜고 그림을 그렸다. 정현웅은 언론사 삽화가였다. 전람회에서 고구려벽화 모사도를 접하고 감동을 받아 한국전쟁 기간에 월북했다. 문화단체총연맹에서 활동한 손영기도 비슷한 시기에 월북해 문화유물보존위원회의 벽화모사사업에 참여했다. 이들의 모사도 제작은 고역이었다. 물자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우기인 여름에는 작업이 불가능했다.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두 달간 고분 안에서 살다시피 해야 했다. 특히 여러 문양으로 장식된 천정벽화를 모사할 때는 장시간 고통을 참아가며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들은 모사도에 벽면의 그림뿐 아니라 바닥에 쌓여있던 퇴적물, 흙탕물에 의한 오염, 회칠이 떨어져나간 흔적까지 표현했다. 벽화를 옮겨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벽화의 보존 상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역할까지 했다. 박윤희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정현웅의 모사본을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강서대묘의 모사도와 현실 벽화 사진을 비교해보면 전체적인 구성에서부터 색채의 사용, 벽면의 질감 상태까지 보다 치밀하게 그렸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원본과 구별이 힘들 정도로 정밀하게 그리는 현상모사는 이후 북한 모사도의 전통이 됐다"고 했다.

고분벽화의 모사와 복제를 거듭하면서 북한 미술은 사실주의 조선화법을 크게 발전시켰다. 오늘날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는 종이 위에 벽체의 입체적인 질감과 색채의 미묘한 차이까지 정교하게 묘사한다. 화강암의 석벽과 회벽의 거친 질감은 무수한 점을 찍어서 표현하고, 수묵화의 자연스러운 농담 표현으로 채색 안료가 빗물에 번진 것과 흙물이 벽면 위에 스며든 흔적까지 세세하게 담아낸다. 박 학예연구사는 "북한은 고분벽화의 색채 연구를 통해 '조선화색감'이라고 명명한 물감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만수대창작사(3700명 이상이 소속된 북한의 미술기관)의 미술기자재 제작단에서 벽화와 같이 대형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한 종이를 직접 제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는 "여러 장의 종이를 이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폭이 3m가 넘는 초대형 사이즈의 종이를 제작해 사용하는데, 북한에서는 '고려참지'라고 부른다. 칠을 더할수록 효과가 좋아서 조선화나 벽화 모사 작업에 이용된다"고 했다.
장천1호무덤 비천 앞방천장[사진=한성백제박물관 제공]

장천1호무덤 비천 앞방천장[사진=한성백제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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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도 제작의 전문화는 최고지도자들의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일찍이 '교시유적'으로 분류돼 학술연구나 보존사업에서 우선 대상이 됐다. 중국 환인현 지방지에 따르면 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안악고분과 강서3묘, 덕흥고분을 직접 방문하고 벽화를 돌아보며 "1600년 전 고구려 인민들의 뛰어난 재능과 생활 풍속, 발전된 문화와 강대성을 잘 보여준다. 고구려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는 귀중한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고(故) 김일성 북한 주석은 일부 고고학자들이 안악3호분을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꼬집기도 했다. 벽화에 반영된 내용으로 보아 우리의 것이 확실하다며 벽화의 보존 문제와 더불어 인민이 함께 널리 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직접 조사에 나설 수 없는 중국 지역의 고분벽화 모사에도 적극적이었다. 1972년과 1974년에 사진촬영단을 보내 고분벽화를 촬영하게 했고, 1978년에 국가미술대표단을 집안에 파견해 고구려 고분벽화를 촬영 및 모사했다. 당시 찍은 사진자료를 근거로 집안 삼실총, 집안 사신총, 집안 오회분묘 등의 모사도가 제작됐다. 남북의 정치적 긴장 관계가 완화된 2000년대 초반에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남북한 문화협력을 시도했다. 2002년에 '특별기획전 고구려'를 개최해 서울 도심에서 처음으로 북한 유물을 소개했고, 2004년에 '남북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을 열어 새로 제작한 벽화모사도 예순세 점과 2002년에 제작한 벽화모형을 전시했다. 한반도 평화 정착 무드가 다시 조성되는 요즈음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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