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엎친데 폭락 덮치고 시세조작 의혹까지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이민우 기자] "두 손, 두 발 다 묶인 상태입니다." 국내 중소 가상통화 거래소를 운영했던 김승기 엑스블록시스템즈 대표는 이렇게 토로했다. 은행은 신규 가상계좌 개설을 거부하고 있는 데다 정부의 규제는 수개월째 '추진 중'인 상태에 머물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선택지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막막한 상황"이라며 "저마다의 자구책을 찾아 말 그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했다.
◆투기·해킹…부정적인 시선에 위축=가상통화 시장을 무조건 투기로 바라보는 시선은 거래소들의 운신을 폭을 좁히는 첫 번째 요인이다. 국내 거래소인 업비트, 코인네스트 등이 내부거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업비트는 실제 보유하지 않은 암호화폐를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전산을 조작하고 '장부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코인네스트는 전 대표 등이 횡령 및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여기에 빗썸, 코인레일 등에서 잇따라 수백억원 규모의 해킹사고가 일어나자 사회적인 시선은 더욱 악화됐다.
이에 아예 거래소업을 포기하고 다른 먹거리에 찾아나선 업체들도 있다. 거래소 코인링크를 운영했던 써트온이 대표적이다. 써트온은 엑스블록시스템즈로 사명을 바꾸고 블록체인 기반 문서 공유 플랫폼을 개발하는 기술기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했다. 엑스블록시스템즈 관계자는 "정부는 어떤 규제책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 지 판단이 어려운 가운데 투기를 조장한다는 여론이 계속되자 거래소를 분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각국 규제 '깜깜이', 거래소는 우왕좌왕=이처럼 국내외 가상통화 거래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최근의 가격 하락 등 시장 침체뿐만 아니라 각국의 규제 방향이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례로 가상통화 거래소 바이낸스가 규제 변화에 따라 홍콩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몰타로 근거지를 옮겨야 했던 것처럼 각 나라의 규제 불확실성이 되레 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각 나라의 규제는 가상통화 성격 규정, 불법행위 차단, 소비자 보호, 과세방안 마련 등의 큰 방향에선 공통점이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천차만별이다. 중국이나 인도의 경우 가상통화 공개(ICO) 자체를 금지하거나 거래소를 폐쇄하는 등의 적극적인 소비자 보호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는 과도한 손실 발생은 막으면서도 거래소 면허제, 은행계좌 접근 허용 등으로 가상통화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나라의 규제 방향이 오락가락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지난달 일부 거래소에 거래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하는 등 가격 조작 행위에 대한 조사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증권으로 분류해 규제를 강화할 것인지를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던 이더리움이 유가증권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규제완화 가능성을 키웠다. 며칠 사이에 규제 당국이 규제 강화와 완화 사인을 잇따라 보낸 것이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통화)거래소는 가상통화를 법정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창구, 과세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창구, 범죄자금을 추적할 수 있는 창구, 지하자금을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부의 규제는 투자자 보호, 불법자금 차단, 신산업 진흥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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