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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간 매 맞은 아내, 남편 살인…'매 맞는 아내 증후군'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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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없음.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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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남편인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남편을 돌로 내리쳐 죽인 아내에게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아내 A 씨는 37년 결혼생활 동안 남편에게 가슴을 칼에 찔리는가 하면 여러 번 머리를 맞고 기절해 응급실에 실려 갔던 적도 있는 등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며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앞서 1심과 항소심은 A 씨 행위가 정상적인 사물변별능력이나 행위통제능력이 없는 심신미약 상태까지는 아니었고, 사회통념상 정당방위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대법원이 범행동기를 인정하는 참작동기 살인을 고려 선고를 했다면서도 사법기관이 중재했다면 A 씨가 피해자로 인지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 씨 주장이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3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방송에 출연 이같이 지적한 뒤 “37년 동안 (사법기관 등이) 도와주지 않고 결국은 자력으로 구제를 한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지금 이런 부분에 총체적인 문제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A 씨 행동은 본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A 씨는)37년 동안 정신을 잃어가면서 두부 손상을 일으킬 정도의 심각한 폭력 피해를 받은 여성이 결국에는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보면 살고 싶다는 본능”이라면서 “이런 사건은 대부분 공포심 때문에 살고 싶다는 그런 이제 본능적 욕구로 상대를 공격하게 되는 일종의 방위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A 씨 행동이 법원에서 인정하지 않은 정당방위라는 분석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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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년간 가정폭력당해…남편 살해한 A 씨 행동은 ‘매 맞는 아내 증후군’

법무부 의뢰로 김영희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연구팀이 2004년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청주여자교도소 수형자 4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 살인범의 특성, 범죄이유, 그리고 재활가능성’에 따르면, 남편 혹은 애인 살인죄로 수감 중인 249명 가운데 82.9%가 남성에게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 살해 여성은 88.5%가 초범이었다.

또 여성들은 수감 중에도 TV를 시청할 때 가정폭력과 유사한 장면이 나오거나 남편과 유사한 사람이 나오면 불안을 느끼고, 폭력을 당하는 꿈을 꾸거나 수면 장애가 발생해 이른바 ‘매 맞는 아내 증후군’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 맞는 아내 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이란 197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인 르노어 워커가 제안한 개념으로, 남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이 ‘긴장 고조→남편의 구타→구타 중지와 화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면서 무기력증을 학습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서 우울증과 불안, 수면장애 증상을 보이다 공황발작이나 폭발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살인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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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매 맞는 아내 증후군’ 불인정…미국은 1984년 인정, 정당방위 요건에 적용

하지만 법원은 이 증후군으로 인한 정당방위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살인죄를 범행의 동기에 따라 참작해 ‘참작동기 살인’으로 분류 징역 4년~5년을 선고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지법 형사5부(최윤성 부장판사)는 2005년 7월말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자신을 위협하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B씨에 대해 일반적인 살인사건의 형량보다 낮은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앞서 2004년 1월 서울 서부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김남태)는 가족에게 "다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흉기를 휘두른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C(46)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형 집행을 5년간 유예했다.

재판부는 "범행은 매우 중 하나 범행동기와 과정에 참작할 바가 있으며 유족인 자녀가 선처를 바라고 있는데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선고이유를 밝혔다. 또 "피고인은 가해자이지만 피해자"라며 "피고인의 자녀가 증언한 가정폭력의 피해 등을 고려해 볼 때 피고인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법원의 판결과 다르게 다른 나라는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을 판결에 적용해 받아들이고 있다. 1984년 미국 뉴저지주에 살던 켈리라는 여성은 결혼 후 7년여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다. 폭력이 지속하던 어느날 켈리는 지갑 속에서 가위를 꺼내 남편을 찔러 숨지게 했다. 켈리는 법정에서 살해 동기에 대해 “남편이 돌아오면 나를 죽일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이 재판에 전문가 증인으로 나선 심리학자는‘매 맞는 아내 증후군’ 이론을 제시하며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진 켈리 입장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뉴저지주 대법원은 결국 이 주장을 받아들여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후 미국의 법원은 이 증후군을 받아들여 정당방위의 합리성 요건과 임박성 요건을 완화하는 데 활용해 왔다. 또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법정에서도 이 ‘매 맞는 아내 증후군’ 연구 성과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A 씨 측 변호를 맡았던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는 “대법원이 정당방위와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고 원심 판결을 확정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센터는 “장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학대 여성은 대부분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세를 나타내고 있다”강조했다. 이어 “이들을 살인자로 단죄할 것이 아니라 사건의 경위, 동기, 심신상태를 구체적으로 살펴 정당방위나 심신미약, 심신상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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