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말이지만, 자신을 뒤로 물리치고 '빅픽처'를 그리는 것은 인간의 숭고한 과제라 할 만하다.
손양원 목사는 일제시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목회를 했다. 그들과 함께 한 삶이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해 수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8년, 그가 있던 지역에서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좌익 세력들에게 잡혀 인민재판에 회부됐고, 결국 형제가 함께 총살당했다. 전쟁이 나기 전부터 이미 민족 간 살육이 횡행하던 때였다. 다른 생각, 다른 이념은 서로를 원수로 만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음이나 말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건 이후, 이번에는 형제를 죽인 이들 중 한 명인 안재선이라는 학생이 체포돼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손 목사는 계엄사령관을 찾아갔다. "나의 죽은 아들들은 결코 자기들 때문에 친구가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 애들은 친구의 죄 때문에 이미 죽었습니다. 만일 이 학생을 죽인다면 그것은 동인, 동신 형제의 죽음을 값없이 만드는 것입니다." 석방을 간청했고 받아들여졌다. 손 목사는 안재선을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용서할 만한 일에 대해 용서하는 것은, 어쩌면 어렵지 않을 지도 모른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의 의미는 아닐까. 우리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원수로 증오하면서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다. 한반도의 지각 밑에는 증오가 용암처럼 흘렀다. 증오는 세상을 왜곡시키기도 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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