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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 D-한달, 기업들은 여전히 실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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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안하늘 기자] # 대기업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비흡연자다. 하루 서너잔 커피를 마실 때가 잠시나마 업무에서 벗어나는 휴식이다. A씨는 최근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상사의 한 소리를 들었다. 한 달 뒤부터는 주당 근무 시간이 52시간을 넘을 것 같으면 비흡연자도 휴게 시간에 흡연한 걸로 채워 넣어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것. 자발적으로 꼼수를 부리라는 얘기다. 커피 마시는 시간은 예외 없이 30분씩 휴게 시간으로 잡힌다.

# 대기업 전무급 임원 B씨는 운전을 못 한다. 수행 비서(운전기사)가 새벽부터 때로는 밤늦게까지 운전을 대신한다. 일정이 많은 주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수당을 꼬박꼬박 챙겨주면서 운전기사와 함께 했지만 다음 달부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꼼짝 없이 발이 묶이는 신세가 됐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선 기업 현장의 근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사무직의 경우 하루 8시간 근무 후 PC 화면이 자동으로 꺼지는 PC 오프제나 유연 근무제를 속속 도입하고 생산직은 교대제를 바꾸는 방식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환경에 대응하는 분위기다. 대기업은 몇 달 전부터 예행 연습을 통해 주 52시간 근무제에 적응하고 있지만 내달 1일 본격적인 시행과 함께 온갖 편법과 꼼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실정이다.

대기업에서 인사 및 노무 업무를 담당하는 C씨는 "대기업은 7월 이전부터 사전 연습을 해서 어느 정도 적응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고심 중"이라며 "결국 업무 시간을 줄이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해외 출장자나 임원 운전기사 같은 특수한 상황이 문제"라며 "아직 해결책이 없는데 운전기사의 경우 그룹 계열사끼리 인력을 공유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이 경우 운전기사의 임금이 줄거나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유ㆍ석유화학업계는 장치 산업 특성상 매년 정기적으로 예정돼 있는 유지ㆍ보수 기간 불가피한 연장 근무가 당장 해결 과제다. 탄력근무제를 적용할 수는 있지만 단위 기간이 3개월로 제한돼 있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탄력근무제 기한을 1년으로 늘리면 문제가 없지만 3~6개월 단위로 적용하면 통상 두세달씩 걸리는 정기 보수로 인한 초과 근무를 대체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야근이 잦은 업종이나 직군도 당분간 '눈치 작전'이다. 대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조간 스크랩 업무로 새벽에 출근하거나 정식 근무 시간 이전의 조찬 모임 혹은 퇴근 후 저녁 자리 등은 근무로 봐야 하는지 아직 방침이 정해진 바 없다"면서 "일부 기업은 이런 업무를 근무 외 시간으로 간주한다는데 이에 대한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준법 대응이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업무 중 커피를 마시거나 흡연하는 시간을 휴게 시간으로 철저히 적용하는 식이다.

상시 근로자가 300인 이상인 중견기업은 특히 고용난을 걱정한다. 고양시에서 플라스틱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중견기업 대표 D씨는 "총 근로시간이 줄어 직원들 임금도 실질적으로 매월 수십만원씩 감소하게 됐다"면서 "고용주 입장에서는 직원을 더 고용해야 공장을 365일 돌릴 수 있는데 임금도 더 줄어든 마당에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지 않으려고 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도 가파르게 올라 공장을 베트남 등 해외로 이전해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복지팀장은 "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탄력근무제를 최소 1년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6개월 이상씩 일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업종에서는 턱없이 선택지가 부족한데 업황 사이클에 맞춰 1년 정도까지는 늘려야 실제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해외 출장 시 근로 시간을 어떻게 적용하느냐 등 해석이 모호한 대목도 시행 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가이드라인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안하늘 기자 ahn70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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