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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인간이 가장 탐낸 권력, 시간

최종수정 2018.05.30 15:12 기사입력 2018.05.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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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동기화의 과학과 두 남자의 노력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인간이 가장 탐낸 권력, 시간


시청률 40%를 기록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기억하시나요? 제목에는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과 태양이 왕을 의미하는 은유적 상징이 숨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무려 190번의 일식을 기록했습니다. 왕을 의미한 태양을 잃은 일식을 하늘의 경고로 여겨 왕과 신하는 빛을 되찾을 때까지 소복을 입고 기다렸습니다. 일식 예보에서 지금의 15분 정도인 1각刻을 틀려 경을 치른 신하가 있었다는 기록은 권력자가 일식에 민감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조선의 시간은 중국의 책력을 사용한 계보를 이어왔지만, 북경과 한양은 위치가 다릅니다. 당연히 일식 시간도 달랐겠지요. 세종대왕은 조선의 시간을 찾으려 했고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며 20년 동안 노력 끝에 한양을 기준으로 조선의 시간을 완성합니다. 새로운 조선 책력에 맞춰 계산한 날짜인 1447년 8월 1일 신정 3각 50초에 예보한 일식은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우주에서 일정 한 속도를 가지고 한쪽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무엇인가에 마디를 새기고 그 마디를 세밀하고 정교하게 다듬어 갑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고대 문명부터 나라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정했습니다. 여기에는 시계의 역사가 맞물려 있지요. 기원전 1500년경 오벨리스크에는 거대한 해시계가 있었고, 바빌로니아의 60진법으로 1시간은 60분이 됩니다. 15세기 조선에는 해시계가 있고 17세기 유럽에는 진자시계가 있었습니다. 20세기에 수정진동자를 이용한 정밀한 쿼츠시계가 등장합니다. 세상을 관통하는 시간은 하나인데 인류가 만든 시계는 점점 정밀해졌음에도 어느 하나 똑같은 시간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이런 오차는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오차는 권력 앞에서 달라집니다. 서양의 제국주의에서 시간의 오차는 ‘동시성’이라는 큰 벽을 만납니다. 항해와 철도건설로 확장된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정확한 측지 학을 요구했지요. 시간은 결국 공간의 통제와 권력의 핵심이었습니다.

시간 동시성에 과학이 접근하며 자연스럽게 시간은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19세기에 ‘시간의 동시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공간과 시간의 측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만 비로소 물리학이 일관성을 지닐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에는 난해한 중력방정식을 푸는 물리학자가 아닌 여러 공간에 흩어져 있는 시계를 동기화하려 애쓰는 특허국 직원의 다소 낯선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고민을 시작한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입니다.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인간이 가장 탐낸 권력, 시간
학자들까지 나서며 시계를 동기화하려 합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시계를 동기화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고 어려운 걸까요? 지도를 펼치면 위도와 경도가 있습니다. 두 숫자만 알면 지구 위 어느 곳이든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지요. 만일 북반구 어느곳에서든 바라본 북극성과 지평선의 각도가 같으면 시간과 관계없이 같은 위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지점의 경도 차이를 알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각 지점에 천문학적 측정을 위해 두 관찰자가 필요하고 삼각함수를 이용해 답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구가 자전하며 두 지점이 움직이며 복잡해집니다. 결국 두 장소에서 시간 오차 없이 동시에 측정해야 하는데, 바로 ‘동시’라는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겁니다. 두 관찰자의 시계가 같은 시간이어야 하니까요. 경도 문제는 곧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공간의 문제는 시간의 문제와 촘촘하게 얽히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간’이라는 공통된 고민을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생계를 위해 특허국에서 근무한 과학자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특허국에서 보낸 시간 대부분은 시계 동기화 특허 업무이고 이 경험과 고민이 이후에 나온 이론물리학 업적의 토양이 된 것입니다. 그가 시간 좌표화를 위해 물리학 분야를 견고하게 정리하고 있을 무렵 푸앵카레는 프랑스 경도국장까지 오르며 공간을 견고하게 다지고 그의 방식으로 시간에 접근합니다. 아마도 국가가 그에게 준 막대한 임무가 그의 시간 고민을 깊게 만들었을 겁니다.
19세기 전자기학 이후에 발달한 전기와 통신은 제국의 영토 확장에서 철도와 항해라는 교통수단 못지않은 혈관이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도시에서 나라로, 그리고 식민지까지 해저케이블을 깔며 전신망을 확장합니다. 구리선 위로 시간 정보가 흐르며 세계지도의 분할이 일어 납니다.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국제기준경도(본초자오선)가 필요합니다. 결국 땅의 중심은 시간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1884년에 본초자오선이 영국을 지나는 것으로 결정되자 프랑스의 저항은 거셌습니다. 프랑스는 경도의 측정, 지도 제작 등 실질적인 문제에 몰입합니다. 시간과 지도라는 세계 질서에 프랑스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거지요. 이 중심에 푸앵카레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하루를 24시간으로 하고 분을 10진법으로 하는 시간개혁안까지 제시합니다. 그러니까 8시99분 다음이 9시인 겁니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이고 연속성이 있어 편리해보입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의 반대로 시간의 10진법은 무산됩니다. 이렇게 시간대와 십진법 그리고 본초자오선을 둘러싼 격렬한 저항은 경도국의 모든 시도를 무력화합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의 탐구를 측지학에만 머물러 있게 하지 않고 전자기학과 물리학으로 들어가 다른 지식들을 더 흡수하며 시간에 관한 사고의 단편들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탐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발표되는 20세기 초에 빛으로 좌표화된 아인슈타인의 시계에서 만나며, 시간의 좌표의 문제는 마무리됩니다.

체코 프라하에 있는 천문시계.

체코 프라하에 있는 천문시계.

시계의 동기화는 모든 이에게 중요했습니다. 한때 미국이 돈 많은 부호에게 천문대의 시간을 판매했던 사실은 행여 그것이 부의 과시라 하더라도 시간의 중요성을 누구나 인지했고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전기통신은 천문대의 시간을 구리선을 통해 모든 시계탑으로 보냈고, 무선 전파가 등장하며 푸앵카레는 에펠탑의 첫 임무로 라디오 전파를 송출했고 이를 통해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가정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도 남산에서 송출하는 라디오에서 정각을 알리는 시보를 듣고 사람들이 각자의 시계를 맞추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은 100만 년에 1초 오차를 가진 원자시계와 일반상대성이론이 적용된 인공위성의 GPS로 공간과 시간을 동기화 합니다. 외국에 나가서도 휴대전화를 켜면 GPS로 위치를 찾아 원자시계와 동기된 시간이 나타납니다. 시간은 곧 경도이고 세계지도에 그어진 경도선이 바로 시간입니다. 지도 위 시간의 전선은 그냥 만들어진 선이 아니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야망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과학이 얽혀 만들어낸 겁니다. 지금은 세상과 우주 흐름의 중심선이 영국에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습니다. 1884년 국제협약에 따라 이 0시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시간이 정해집니다. 지구는 자전을 하니까 지구 둘레를 나누어 하루를 만듭니다. 그런데 본초자오선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24등분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시각을 나타내는 지도를 보면 이 선들이 들쭉날쭉합니다 가로지르는 날짜변경선을 보면 육지와 섬을 피해 그어져 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그리니치 시각에서 9시간이 빠른 GMT+9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각 나라는 자기 고유의 시간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대륙이 큰 경우 시간대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호주는 서머타임까지 적용해 7개의 시간대를 사용하고 45분 차이가 나는 지역도 있지요. 한국과 거의 같은 경도에 있는 북한은 2015년에 우리보다 30분을 앞당겼고 최근 다시 남한시각에 맞췄습니다. 공간도 시간도 제멋대로입니다. 전 세계가 마치 정밀한 움직임을 보이는 커다란 시계 같은 생각이 들지만, 결국 각국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분되어 있습니다. 시간은 결국 인류가 만든 권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시간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마치 신의 전유물 같은 시간을 인류가 눈앞에 가져 왔음에도 시간의 주권은 오롯이 인류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현대인은 늘 시간이 모자라거나 쫓기고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그저 조각난 시간에 자신을 올려 놓고 짧은 위안을 받지만, 어느 순간 거대한 힘으로 강요되어 몸은 일터에 있습니다. 분명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인데 자신의 것 같지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주권을 부여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미터와 킬로그램처럼 국제단위계의 하나인 시간은 과학의 단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시간은 철학이고 인문학이기도 합니다. 푸앵카레의 십진법처럼 나만의 시간 주권을 누려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내일은 8시 59까지 출근해 8시 60분부터 8시 99분까지 책을 읽을까 합니다. 그 시간 동안은 휴대전화를 비행기모드로 놓고 복잡한 세상의 시간과 동기화하는 것도 잠시 멈춰볼까 합니다.

김병민·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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