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원 런던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수준은 이제 외국의 것을 무조건 베껴와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해외 사례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과,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특수한 정치·경제적 환경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해외 사례에서 쓸모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는 이 같은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 런던의 킹스크로스(King's Cross) 재개발 사업을 소개했다. 킹스크로스는 1850년대 빅토리안 시대의 산업 중심지였으나 점차 쇠퇴해 관리되지 못해 버려진 산업 불모지로 전락했다. 1997년 중앙정부로부터 37만파운드(약 5억3500만원)를 지원 받았다. 약 27만1139㎡의 부지에 주거시설과 오피스, 쇼핑시설, 커뮤니티, 극장, 호텔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킹스크로스 사례는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손 교수는 이 과정에서 원주민 내몰림과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 등의 부정적인 측면은 소개되지 않고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킹스크로스의 '어포더블 하우스(Affordable House)'는 전체의 42%에 달한다. '어떤 소득 계층에 속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적합한 주거비용을 지불하고 거주할 수 있는 주택', 즉 킹스크로스 주택 중 42%가 '부담 가능한 주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손 교수는 "어포더블 하우스의 정의가 '주변시세의 80% 수준 주택'이기 때문에 개발 업자가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낮춰 이를 달성했는데 이는 사실상 분양가 규제에 따른 결과"라며 "또 이 '42%'에는 학생용 기숙사까지 포함하고 있어 엄청나게 부풀려진 수치"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게다가 킹스크로스 주변 집값이 크게 올랐다"며 "실제 제가 킹스크로스 주변에 살았는데 2008~2010년에는 월세가 당시 환율로 280만원 수준이었는데 2년 뒤에는 350만원 수준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2000여명의 원주민이 내몰리면서 지역주민들의 반발도 심했다. 2007년에는 개발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결국 패했다.
손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한국은 문제가 많다→선진국 사례는 좋다→선진국의 사례를 베껴오면 우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잘못된 공식이 팽배해 있다"며 "해외사례 모니터링은 필수적이지만 '그대로 베낄 수 있는 사례는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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