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현역 최고령 명랑이발사, 이덕훈 할머니를 만나다
이덕훈 할머니는 평생 손에서 가위와 빗을 놓지 않은 여자 이발사다. 국내 첫 여자 이발사이면서 현역 최고령 이발사로도 꼽힌다. 이덕훈 할머니가 이용사면허증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김현민 기자]평생 손에서 가위와 빗을 놓지 않은 이발사가 있다. 국내 첫 여자 이발사 이덕훈(83) 할머니다. 현역 최고령 이발사로도 꼽힌다.
서울 성북동의 주택가에 아주 오래된 건물에 작은 이발소가 있다. 빛바랜 간판과 사진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안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가위질을 하고 있다. 네 평 남짓한 공간에 이발용 의자는 고작 두 개다. 오래된 의자와 손때 묻은 이발 도구들. 물건 대부분이 30~50년은 기본이다. 선친이 물려준 바리캉은 100년이 넘었다.
“이발사였던 아버지한테서 19살 때부터 이발을 배웠어. 면허시험을 69명이 봐서 합격했는데 여자는 나 하나뿐이야.” 그가 이용사 면허증을 딴 해는 1958년, 올해로 딱 60년째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명랑 이발사로 통한다. 오랜 세월 일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가위를 들 때마다 행복한 기운이 넘친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녹록치 않았다.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 때 북만주에서 생활했고, 스물여섯에 결혼을 했지만 남편 사업은 망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생계를 직접 책임져야 했다. 사람 좋고 인물까지 출중했던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해 200일 넘게 간병했지만 2004년 1월 결국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도 그해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고, 2016년 큰아들마저 폐암으로 잃어야만 했다.
“남한테 손 벌리지 않았고 정직하게 살았어. 그래서 당당하게 살 수 있었지. 힘든 날들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어.”
그런 할머니의 어제와 오늘은 오랜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그래도 글 쓰는 걸 배워두어 다행이라는 할머니는 말로 하기 어려운 세월의 흔적을 글자 하나하나에 담아, 수십 년의 인생을 차곡차곡 모아 뒀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하루를 마친 후 할머니는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음을 정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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