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사람을 먼 곳까지 실어 나르는 기차에 어찌 인생의 비의가 담기지 않으리. 이스탄불에서 부쿠레슈티, 부다페스트, 빈, 뮌헨,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파리에 이르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한밤에 벌어진 살인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계급과 국적과 나이가 다 다르죠.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흘 동안 함께 지내게 된 겁니다. 한 지붕 아래서 먹고 자고,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이 되면 각자의 길로 가서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을 겁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신영희 번역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스위스 사람 파스칼 메르시어가 쓴 동명 소설(Nachtzug nach Lissabon)이 원작이다. 명배우 제러미 아이언스가 출연한 뛰어난 영화지만 인생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소설은 영화를 압도한다.
그는 독백하듯 써내려간다.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전은경의 번역으로 책을 낸 들녘의 소개글도 훌륭하다. "여행은 길지만 언젠가는 끝난다. 그것을 온전히 선택할 수 없다는 데에 존재의 아픔이 있다." 다음의 프레이즈는 인생 그 자체를 설명한다.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huhball@
꼭 봐야할 주요뉴스
출퇴근길 100번은 찍혀…"어디까지 찍히는지도 모...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