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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평창에서 '선진'의 편린을 보다

최종수정 2018.04.02 13:56 기사입력 2018.04.0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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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2개월 동안의 평창올림픽 자원봉사는 개인적으로는 '선진(先進)'이라는 말의 실체에 다가서는 좋은 계기였다. 93개 참가국에는 부자 나라들이 즐비했다. 과연 부자나라는 올림픽 선수촌에서의 모습이 어떻게 다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 시작됐다.

당연히 돈의 씀씀이가 우선 달랐다. 선수촌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하지 않고 자국선수들만 쓸 수 있는 피트니스센터를 따로 만든 나라부터 시작해 선수들의 자전거를 본국에서 공수해 온 나라, 대부분 선수를 아예 선수촌에서 재우지 않고 호텔에서 재운 나라, 본국에서 셰프를 데려와 언제든 본국의 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한 나라 등. 그러다 영국선수단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선발대가 도착하자마자 처음 한 일이 선수단이 묶을 객실의 방화설비가 제대로 가동하는 지 점검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소방점검에만 3시간 이상을 소요했다.

순간 영국의 산업재해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늘 있었다. 그 비밀의 단초가 하나 풀렸다. 다른 어느 선수단도 하지 않는 소방시설 점검을 영국선수단은 했던 것이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안전의 생활화'다. 그러나 한국에서처럼 말로 하는 생활화가 아니라 '실천하는' 생활화다. 마치 디테일한 매뉴얼북을 갖고 선수들의 안전에 대비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소방시설전문가를 선수단 일원으로 데려온 것도 아니다. 선수촌에 연락해서 소방시설 작동 테스트를 할 전문가를 보내달라고 했을 뿐이다. 전문가는 데려다 쓰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점검을 빠지지 않고 했다는 사실이다.

노로바이러스가 자원봉사자 숙소 중 하나였던 삼척 강원대 기숙사에서 발생했다, 선수단 지원 자원봉사자 대부분은 관동대 기숙사를 이용했으나 일부가 삼척에 머물렀다. 영국선수단의 선택은 영국선수단에 배속된 자원봉사자 전원에 대한 1주일 출근금지였다.
선수들에 대한 간접감염을 막기 위해 선제적, 예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어떤 경로로 어떻게 감염되었는 지는 중요치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일단 발생했으니, 우선적으로 조치했다. 노로바이러스는 물을 매개로 전달된다. 이번에는 미국선수단의 조치가 이목을 끌었다. 강릉 숙소에 묵고 있던 미국선수단 자원봉사자들에게 "숙소 물을 먹지 말라"며 생수를 개개인에게 직접 공급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위해요소에 대한 선제적 대응인 것이다.

또 하나 관심을 끌었던 점은 자원봉사자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의 차이다. 일을 시키는 방식의 차이도 있다. 선진국에 배속된 자원봉사자들은 상대적으로 고달팠다. 자전거 조립해야지, 피트니스 기구 조립해야지, 사무실 치장해야지 등 업무량이 그만큼 더 많았다. 그러나 근무시간, 휴무부여 등에서는 매우 공정했다. 업무강도와 공평한 업무부담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선수단 배속 자원봉사자들의 옷과 신발의 사이즈를 사전에 물은 국가도 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일체의 자국 선수복을 지급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원봉사자들이 규정상 선수복을 입고 근무할 수는 없었지만 선수복은 지급됐다. 세심한 배려를 통해 선수단과 자원봉사자를 갑을관계가 아닌 공동체로 묶었던 것이다.

'선진'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단순히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서일까. 이것이 높은 중동국가들은 모두 선진국일까. 잘 살고 못 살고보다 중요한 것이 그 사회의 합리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 내재화ㆍ생활화 돼 있는 정도, 포용적 배려심 등이 아닐까. 물론 내가 본 것은 선진의 편린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과 대비되면서 "아 그래서 선진국"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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