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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끝]훈 후르 투(Huun Huur Tu)

최종수정 2018.03.08 14:01 기사입력 2018.03.08 14:01

음악이 여기에 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여태껏 그 답을 알기 위해 걸어왔는데, 지금도 답을 모른다. 답이 없다는 사실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시와 음악을 동시에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다. 훗날 시와 음악의 ‘황홀’의 비밀을 알아낼 것이라고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행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낙타 대상들(Camel Caravan Drivers)>과 나는 걸어간다. 음악의 대지 쪽으로, 낙타 같은 시와 함께.

음악의 여정을 돌이켜본다. 아바(Abba)와 비틀즈(Beatles)에서 시작하여 80년대 팝송 속에서 맞이한 대학 시절, 낮에는 민중가요와 혁명가의 폭격을 받았다. 밤은 술과 꿈과 낭만의 시간. 김광석, 시인과 촌장, 양희은, 엘튼 존(Elton John), 퀸(Queen), 왬(Wham)…… 그 끝에 전영혁과 성시완. 군대에서 얼터너티브 락과 메탈을 주입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어느 대학 락 밴드 리드 기타리스트였다가 나의 후배가 되었던, 총순에게 너바나(Nirvana)와 메가데쓰(Megadeth)를 소개받았다. 청춘의 불꽃이 타올랐고, 몸은 재가 되었고, 음악으로 무장한 채 세상으로 들어갔다.
생의 고비마다 음악이 있었다. 석사 졸업 무렵에는 억셉트(Accept)가, 박사과정 중에는 펄 잼(Pearl Jam)이, 학위를 받고 황야에 버려졌을 때에는 앨리스 인 체인즈(Alice In Chains)와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과 제프 버클리(Jeff Buckley)가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2007년 가을, 연옥의 끝에서 시인 제이(J)가 소개해준 훈 후르 투를 만났다. 음악의 마지막 천국은 민속음악일까. 킹 크림슨의 베이스 주자 토니 레빈(Tony Levin)과 국제적인 음악 실험 팀 고티카(Goatika)가 훈 후르 투의 멤버와 함께 <코자믹(Kozhamyk)>을 연주한다.

바이칼호 인근 러시아 연방의 자치공화국 투바(Tuva) 출신 훈 후르 투. 이름의 의미는 ‘태양의 프로펠러(sun propeller)’. 광대한 초원에 쏟아지는, 창공을 가로지르는 구름 뒤에서 대지를 향해 퍼져나가는 햇빛이 회전하는 프로펠러처럼 보이는 그곳.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Phillips Feynman)이 생전에 가고 싶어 했다고 알려진 투바. 국토 남쪽에는 알타이 산맥이, 중앙에는 스텝(steppe)이, 북쪽에는 타이가가 펼쳐져 있는 나라. 대자연의 품에서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투바 사람들.

몽골의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한 이들의 음악에는 ‘흐미’(khoomei : ‘인후로 노래하기[throat singing]’나 ‘배음[overton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음, 중음, 고음을 한 사람이 동시에 발성하는 기법)와 ‘시기트’(sygyt : 팔세토처럼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창법―위키피디아)가 흘러넘친다. 나는 지금 밴드의 리드 싱어 카이갈-올 코발릭(Kaigal-ool Kim-oolovich Khovalyg) 앞에 앉아 있다.
나는 고아, 나는 외톨이
가엾게도 아기였을 때 나는 죽지 못했네
만약 아기였을 때 죽었다면
절대로 고통 받지 않았으리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나는
가엾게도 요람에서 죽지 못했네
만약 요람에서 죽었다면
고통에 빠지지 않았을텐데

비참한 아기 새
둥지도 없이 남겨졌네
비참한 아기
엄마 없이 남겨졌네

운명
사람은 그것을 바꿀 수 없네
죽은 엄마
그 누구도 그녀를 데려올 수 없네
?<고아의 비탄(Orphan's lament)> 전문

사람의 노래가 들려온다. 소리의 그림자가 보인다. 영혼의 무게가 사라진다. 초원을 건너온 바람이 사람을 용해시킨다. 불꽃 없는 불이 몸을 태운다. 투명한 재가 바람에 실려 하늘에 떠오른다. 빛의 파동이 죽은 자를 인도한다. 카이칼 코발릭의 육성은 감정을 박피(剝皮)한다. 나는 액체가 된다. 풀썩 주저앉는 물기둥이 된다. 나는 떠나지 못하고, 땅에 박혀, 임종에 다다른 자의 비애로 들끓는 곡성(哭聲)을 온몸에 뒤집어쓴다. 노래가 끝나면 나는 먼지가 될 것이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한 사람, 그를 사랑한다. 시를 압도하는 이 노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살아서는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서야 절망을 내려놓고, 저승에서 구원과 행복과 자유와 평화를 얻은 한 사람의 삶 앞에서, 한 생명의 시작과 끝을 휘어잡은 채 내장을 끊어버리는 소리, 몸을 관통한다. 나는 고통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음악의 끝에 도달했다. 죽음 후에 다시 시작되는 사람의 노래. 눈물로 돌아오는 노래여, 영혼의 노래여……

자작나무
뼈다귀

해에 먹힌다

누이가 죽지 않았다면 흰 눈동자 나도 지녔을 텐데
―장석원, <백야(白夜)> 전문(<<리듬>> 중에서)

한 사람의 죽음 이후였다. 훈 후르 투의 노래 때문에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눈물이 되게 했고, 다음 생으로 인도했다. 내가 그들의 작품에서 간취하고 싶었던 이미지는 흰 밤이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분리되지 않는 밤에 내리는 눈을 보고 싶었다. 그 밤에 죽은 자를 다시 볼 수 있었을까. 자작나무 뼈다귀가 과거에서 현재로 뚫고 나왔다. 나는 구멍난 채 흰 피를 흘린다. 둥 둥 북소리가 대지를 건드린다. 지난 가을 카이갈이 부르는 <투반 인터내셔널(Tuvan Internationale)>을 듣다가 대곡(大哭)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이 배신과 상실의 석양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죽어가는 것들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남으라고, 살아서 복수하라고, 그것마저 버리고 창공을 선회하는 독수리가 되어 그 시체를 뜯어먹으라고, 나를 위무했다. 숨 쉴 수 있었다. 생명이 거기에 있었다. 음악의 시작이었고, 언어의 끝이었다. 시로 돌아가고 싶었다. 음악이 나를 안아 주었다. 음악이 나를 자유로 이끌었다. 인생의 음악, 그것이 나의, 훈 후르 투이다.

사랑이 다시 시작되려 한다. 채상우의 시에 세 번 사용된 ‘그것’은 무엇일까. 제목에 나오는 사랑일 것이다. 나는 사랑을 음악으로 바꾼다. 그리고 사랑과 음악을 하나로 만든다. 시가 여기에 있다.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시작되자마자 사라지고 있다 그것은

사라지면서 시작되고자 한다

몰래 피어나 버린 꽃처럼 흘러오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시작되면서 사라지고 있다 전격적으로 매일매일

사라지면서 시작되려 한다 그것은

너에게도 죽을 마음이 남아 있는가

나무가 제 그림자 속에 뼈를 감추듯

사라지면서 시작되고 있는
―채상우,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을까> 전문(<<리튬>> 중에서)

0. 에필로그(Epilogue)

연재의 끝이다. 음악과 깊게 포옹했기에 더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고맙다. 생의 고비마다 음악이 나를 이끌어 주었다. 돌아보니,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더 많은 자유를 생각한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보듬고 싶다.
음악의 빛 앞에서 나의 언어는 초라하다. 시를 쓰는 자로서 음악과 대결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음악과 시의 차이를 알아내기 위해 고심한다. 시작점은 언제나 언어이다. 의미의 문제이다. 음악가도 아니고 음악을 창조하지도 못하는 열렬한 팬으로서, 나는, 시 쓰는 자라는 의식을 다시 새긴다. 음악 ‘같은’ 시는 없다. 시는 음악이 아니다. 음악 역시 시가 아니다. 시와 음악의 공통 지점이 있으나, 시와 음악을 하나로 뭉칠 수는 없다. 시와 음악은 경쟁자이다. 음악을 이기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곳으로 유목 가고 싶다. 시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꿈꾼다. 음악을 사랑하는 시이면 충분하다. 음악과 시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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