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조사위 "국정원·문체부의 문제작 검증 및 배제 지시 확인"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부 독립·다큐 영화들을 문제작으로 분류,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에서 배제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최소 2000만원을 기대할 수 있는 영진위의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에서 배제됐다. 대부분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배제 지시가 하달돼 심사에서 탈락했다. 연간 11억4000만원을 투입되는 독립영화 제작지원 사업에서도 처지는 다르지 않았다. 문제작으로 지정돼 조별심사에서 탈락하거나 심사위원들로부터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
문제작으로 선별하는 기준인 배제 키워드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타났다. 좌파적 성향과 시국사건, 북한 관련, 역사 관련, 블랙리스트 단체 연관성 등이다. 조사위는 "배제 키워드를 설정하고 이와 연관된 영화들이 지원대상에 올라오면 사전에 국정원이 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사실은 2015년 7월 국정원 간부가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 과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확인됐다. '이념성이 강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던데, 어떻게 대처하실 계획이신지요?' 등의 직접적인 내용으로 지원 배제를 종용했다.
국정원 정보보고서에서는 지원 배체 조치사항도 발견됐다. 문체부가 영진위에 지원대상 편수를 줄이더라도 비판성향 작품을 철저히 배제하도록 주문해 독립·다큐 영화계의 건전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조사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의 '철의 여인'을 개봉하지 못하도록 하고, 청와대를 비판하는 성격의 '자가당착'의 상영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는 지시 등을 확인했다. '귀향'이 정부 산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을 금지하고, 일반극장 개봉관 확보를 최소화도록 하는 내용도 파악했다"고 했다.
조사위는 "좌파, 반정부 등을 이유로 관련 작품들을 지원사업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은 심사의 공정성과 평등한 기회 보장을 훼손한 위법 부당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배제 실행이 극조의 보안 속에 이뤄졌기 때문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례가 훨씬 많은 것으로 본다"며 "조사의 범위를 영진위 사업 전반으로 확대하는 한편 심사 과정에서의 문제를 계속 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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