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파트 단지는 지난달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실, 관리사무소 등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단지를 24시간 경비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경비원들에게 처우개선을 해 주자는 차원이었다. 지난 21일 열린 입주자대표회의에선 에어컨 설치 공사 업체를 선정하고 관련 예산을 집행하기로 의결했다.
지난 22일 입주자대표회의 결과를 단지 내에 공고하자 반대여론이 등장했다.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막으려는 전단지와 벽보가 등장한 것이다.
지난 26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전단지와 벽보를 찍은 사진이 올라오면서 네티즌들은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 “이기적이다” “근거가 터무니없다”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날 이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찬반 의견이 여전히 엇갈렸다. 30대 남성 주민은 “찬성에 표를 던졌다”며 “도의적으로 당연히 할 수 있는 지원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주민도 “나도 찬성이었다. 투표했을 때만 해도 찬성이 압도적이었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 앉아 쉬던 70대 할머니 A씨도 “투표하는 줄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면서 “평수도 작은 서민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옆에 있던 동년배의 B 할머니도 “정작 입주자들도 에어컨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며 “경로당에서 얘기해보면 우리 또래들은 대부분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말한 투표는 지난달에 일주일가량 진행된 투표를 말한다. 경비실 앞에 찬반 투표용지를 두고 주민들이 직접 찬성 또는 반대 의사를 동그라미와 엑스표시로 밝히는 절차였다. 이때 투표 결과 찬성 의견이 더 많아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했던 것이다.
일부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찬성률이 높았기 때문에 에어컨 설치는 현재 진행 중이다. 관리사무소 측은 이달 말까지 설치 공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달부터 에어컨을 가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비원들은 말을 아꼈다. 자신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주려는 주민들과 이에 반대하는 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에 대한 미안함이 말과 표정에서 묻어났다. 이 아파트의 한 경비원은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왜곡해서 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최웅 인턴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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