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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사회]육아 문제만 해결돼도 男 보란듯 능력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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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9급 여성 합격자 52%…4급 이상은 13.5%로 확 줄어
아직도 '대한민국 여성 1호'에 감동…고위직 지출 어려워
일부 여성은 본인이 승진 꺼려, 일·가정 양립 근로환경 조성돼야

제공=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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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5년 차 간호사 A씨는 임신 초기 휴가 사용 때문에 직장을 잃었다. 이전에 유산을 한 번 경험했던 터라 각별히 조심해야 했던 A씨는 병원의 허락을 받고 한 달 무급휴가를 사용했다. 일주일만 더 연장하고 싶어서 병원에 얘기했더니 이틀 후 병원에서는 "몸도 안 좋고 복귀해서 일하다 무리하거나 몸이 힘들다고 그때마다 사정을 봐줄 수도 없고 차라리 퇴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사직을 권했다. 억울했지만 A씨는 사표를 썼다. 이 병원과 원만하게 끝내야 암암리에 존재한다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지 않고, 출산 후 다른 병원에서 일자리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B씨는 자신이 보조 인력으로 전락한 것 같아 속이 상한다. 똑같이 시험을 보고 들어왔고, 공식적으로는 임금이나 업무를 수행할 때 성별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승진 가능성이 높은 업무와 핵심적인 의사결정 업무는 거의 남성에게 배치되고 있다. 이로 인해 성과 인센티브가 차이 날 뿐 아니라 승진으로 인한 급여 차이까지 발생하게 됐다. 주로 남성이 관리 업무를 맡는 반면 B씨와 같은 여성들은 잡다한 지원 업무를 전담한다. 손님 커피를 준비하거나 회의실 예약, 다과 준비, 참석자 연락, 명패 제작, 회의록 작성 등이다. B씨는 "공식적인 차별은 없다면서도 사실상 여성을 보조적인 인력으로 고착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여성 1호'는 여전히 감동을 주는 수식어다. 여성이 진출하지 못한 분야가 많은 탓에 여성 최초라는 단어는 언제나 눈길을 끈다. 양성평등 분위기가 최근 많이 정착되고 있지만 유리천장을 뚫기는커녕 천장으로 가는 중간 단계인 '유리벽'에 막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엄마 되기 포기해야 경력 쌓는 나라=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한국의 성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평등지수는 70.1로 2014년 68.9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100으로 갈수록 완전한 성평등을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성평등한 상황으로 볼 수 있지만 분야별로 살펴보면 의미는 달라진다. 성평등지수 중 보건 분야가 95.4로 성평등 수준이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교육·직업 훈련(93.4), 복지(71.6), 경제 활동(71.5) 등이었다. 반대로 가장 낮은 점수는 의사결정 분야로 25.4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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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9.1에서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절대적인 수준이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의사결정 분야는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증가율, 관리직 여성 숫자 등을 토대로 측정된다.

이 같은 결과는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발표한 '2016 인간개발보고서(HDR)'에 소개된 우리나라의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GII)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GII는 0.067점으로 188개국 중 10번째로 성평등한 나라로 평가 받았지만 이는 생식건강(모성사망률·청소년출산율)이 크게 증가해서 개선된 것으로 여성권한(여성의원비율·중등교육 이상 받은 인구), 노동참여(경제활동참가율) 등은 비슷한 순위권 국가들에 비해 뒤떨어졌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50.0%로 칠레(50.7%·38위), 체코(51.1%·28위), 스페인(52.3%·27위) 수준이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수치는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 71.8%에 비해 20.8%포인트 가량 낮은데 성평등 10위권 국가 중 남녀 격차가 20%포인트 이상 난 국가는 없었다. 여성의원 비율은 16.3%로 인도(12.2%·125위), 터키(14.9%·69위), 인도네시아(17.1%·105위)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꾸준히 경력을 유지해 고위직에 도달하는 여성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공무원 5급 합격자 여성 비율은 41.4%를 기록했으며 9급은 52.6%로 남성을 넘어섰다. 그러나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은 13.5%에 불과하다. 그 많던 여성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나라에선 20~50대 여성 중에서 경제활동참가율이 가장 낮은 연령은 30대다. 20대는 65.6%, 30대는 60.1%, 40대는 67.4%, 50대는 63.0%다. 전형적인 M곡선으로 30대 때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40대 재취업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 경력단절여성은 190만6000명으로 연령별로는 30대 101만명(53.1%), 40대 58.7만명(30.8%), 15~29대 16.1만명(8.5%) 순으로 많았다. 30대의 경력단절 사유는 임신·출산, 육아(65.6%) 때문이 1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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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해결이 경단녀 문제 해결 첫 걸음=고용현장에서 발생하는 성 차별도 여전하다. 직장인 C씨가 일하고 있는 공장의 조립·포장업무는 성별에 따라 두 직종으로 나뉜다. 남성은 '기술직종', 여성은 '단순직종'으로 분류된다. 남성 평균임금은 250만~300만원 수준인데 여성은 170만~180만원이다. C씨는 같은 공장에서 15년 근무하다 몇 년 전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된 후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지만 경력 인정 없이 매년 계약이 갱신되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불만을 제기하면 남성 근로자들은 "여자는 아르바이트이지만 남자는 생계를 책임져야 해 임금을 더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피력한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7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리천장을 느끼는 순간으로는 '직책자를 남직원으로만 임명할 때'(39.7%·복수응답)를 1위로 꼽았다. 이어 '여직원들이 승진에서 밀릴 때'(33.7%), '중요한 출장, 미팅 등을 남직원 위주로 보낼 때'(29.7%), '육아휴직한 직원들이 복귀 없이 퇴사할 때'(29.4%), '남직원들끼리만 회식 등 친목 도모를 할 때'(14.7%)의 순이었다.

본인의 현재 직장에서 최종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승진 직급도 성별로 차이가 있었다. 여성은 '대리'(28.7%), '과장'(27.1%)이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남성은 '부장'(31.1%), '임원'(29.2%) 순으로 답했다. 특히 임원 승진의 경우 남성은 29.2%를 차지한 반면, 여성은 7.3%에 그쳤다.

김명숙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부장은 "육아나 출산 등을 사유로 퇴사를 강요하는 노골적인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동일 직종임에도 여성은 핵심 업무를 맡을 직책에서 배제되거나 관리직 승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리천장 극복을 위해 조직에서 각 단계마다 여성 인재 활용에 적극 등용해 여성 인재풀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를 위해선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근로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문미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사회연구센터장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이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부분이 있지만 어느 시점에서든 이런 기회가 있어야 되는 것이고 해야 된다"며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고 검증된 여성 인재를 쓰고 싶다면 기관장까지 올라가기 위한 내부적인 조직의 자리가 많은데 그런 직급과 주요 보직에 여성이 많이 있어야 하고 또 경험 속에서 잠재적 역량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 문 센터장은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근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일부 여성들은 능력이 있음에도 주요 보직에 가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경력보다는 가정을 택하는 여성이 많기 때문인데 잠재된 역량이 있는 여성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현실적 육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근로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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