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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형 첫사랑에 미쳐봤던 그때가 추억돋는 영화 '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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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의 '시네한수' - 용써서 낳은 소녀 '용순'의 순진집착형 성장기


용순은 어리지만, 내 남자를 사수하기 위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당돌함을 지녔다. 사진 = 영화 '용순' 스틸 컷

용순은 어리지만, 내 남자를 사수하기 위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당돌함을 지녔다. 사진 = 영화 '용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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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약간의 어리석음과 많은 호기심이다. 용순의 첫사랑도 그렇다.

버나드 쇼의 경구를 되뇌지 않아도, 열여덟 용순의 첫사랑은 10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스크린을 사뿐히 누비며 어리석음과 호기심 사이의 간극을 십대 특유의 대담함과 저돌성으로 헤쳐 나간다.
곁에 있는 든든한 친구, 그리고 나 좋다고 껌딱지처럼 붙는 소년과 함께 내 남자의 여자(?)를 추적하는 거침없는 소녀, 용순의 찌푸린 미간은 그녀에겐 절체절명의 고민이지만 관객에겐 풋풋한 웃음을 선사한다.


사진 = 영화 '용순' 스틸 컷

사진 = 영화 '용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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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여자를 찾아서

충청도 한 시골 마을,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고 있는 열여덟 용순(이수경 분)은 육상부를 맡고 있는 기간제 체육교사(박근록 분)과 비밀연애 중이다. 헌데 그의 수상한 행동에서 다른 여자의 낌새(?)를 눈치챈 용순은 그 여자가 담임선생인 영어(최여진 분)임을 알고 남친사수에 돌입한다.

사진 = 영화 '용순' 스틸 컷

사진 = 영화 '용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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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 상황의 무자극성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을 상회했을 때 용순이 두는 무리수는 어쩌면 선생님과 여제자라는 설정에서 상상할 수 있는 관객의 음험함을 슬쩍 건드리지만, 관객이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건 정작 그녀가 수줍게 마음을 담은 조약돌 위 그림이다.

모텔이 등장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천변 다리 밑 선생님 차 안 은밀한 데이트도 하지만 클리셰에 가까운 장소와 상황이 관객의 예측을 보기 좋게 빗나갈 때 관객은 분노보다 열여덟 소녀의 심상을 곱씹게 된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아 행동이 빤히 예상되고, 예측 가능한 욕망의 대상으로 작동하는 소녀가 아닌 ‘진짜’ 열여덟의 풋풋하되 진지한 고민으로 감정이 널뛰는 소녀, 용순은 순간 배신감이나 분노가 아닌 잊어버렸던 나의 그 시절, 그 오롯한 감정을 선사한다.


사진 = 영화 '용순' 스틸 컷

사진 = 영화 '용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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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 올려붙이는 선생, 딸 지켜주는 새엄마

'용순'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모두가 주체적이며 거침이 없다. 용순의 절친 문희(장햇살 분)는 용순에게 연신 “네가 체육보다 아까워”라며 연애를 뜯어말리고, 담임인 영어는 용순에게 남자를 뺏길 위기에 봉착하자 제자의 뺨을 올려붙일 만큼 거침없으며, 몽골서 온 새엄마는 용순의 모욕과 멸시에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담임선생을 엎어 치며 가슴으로 품은 딸에 대한 모성을 증명해낸다.

별안간 딸을 위해 결혼했다 둘러대는 아빠(최덕문 분)의 불친절하고 이기적인 설명이나, 제 감정 하나 추스르지 못하고 이렇다 할 입장조차 얼버무리는 체육선생의 우유부단함은 '용순' 속 여성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장치로 그 쓸모를 다 한다.


사진 = 영화 '용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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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순의 첫사랑, 용순 외(外) 첫사랑

용순이 아주 어렸을 때, 시한부 선고를 받고는 자기 첫사랑 찾아 떠나느라 용순과 아빠를 버리고 떠난 엄마에 대한 기억은 어쩌면 체육에 대한 용순의 순진하지만 우직한 집착의 기원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사춘기 여고생 용순의 첫사랑이란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의 첫사랑을 그려낸다. 어려서 나를 두고 떠난 엄마의 첫사랑, 그런 엄마로 인해 외롭게 지내다 이제야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맞은 아빠의 첫사랑, 용순을 끈질기게 쫓아다니지만 오히려 일상의 사소한 보폭을 맞출 수 있는 빡큐(김동영 분)에게 싹튼 문희의 첫사랑까지.

오히려 이뤄지지 않아서 더 행복한 '용순' 속 첫사랑은 영화를 천연덕스럽게 추동하는 맥거핀으로 성실히 복무하고 아스라이 사라진다. 그 때, 그 순간이 아니면 안 되지만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의미를 품고 내려앉는 첫사랑은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므로, 영화는 용순을 통해 우리 앞에 그때 그 시절의 나를 호명해 불러 세운다.


영화는 생각보다 짧지만, 그 울림은 비로소 앞을 보고 달리기 시작한 용순의 발돋움만큼이나 올곧고 세차게 가슴에 남는다.



아시아경제 티잼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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