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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더 그레이티스트 - 무하마드 알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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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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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지는 않지만, 장렬한 패배는 영웅의 최후를 더 빛나게 한다. 때로는 그 빛이 영웅의 삶 전체로 확장된다. 무하마드 알리(1942-2016)의 권투인생에는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처음에는 링 밖의 어둠이 링을 덮친 것 같았다. 그러나 진실은 알리가 운명과 대치하면서 필연으로 맞이한 인생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알리는 1967년 미군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반대하며 무슬림으로서 종교적인 신념을 내세워 징집을 거부했다.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병역 기피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도 박탈당했다. 1971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4년 동안 경기를 하지 못한 권투선수 알리의 전성기는 지나가 버렸다. 정치적이고 종교적이며 인종적인 선택이었다. 그때 알리는 이렇게 소리쳤다.
 "내 양심은 내가 미국을 위해 나의 형제 또는 유색인종, 진흙탕 속에서 굶주린 불쌍한 사람을 쏘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왜 그들을 쏘나. 그들은 나를 검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두들겨 팬 적도 없다. 그들은 내 국적을 빼앗지 않았다. 내 아버지 어머니를 강간하거나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을 왜 쏘나. 내가 어떻게 그들을 쏘나. 내가 어떻게 그 불쌍한 사람들을 쏘나. 그냥 나를 감옥에 가둬라."

 링에 복귀한 알리가 1974년 10월 30일 무패의 철권 조지 포먼(68)을 이기고 벨트를 되찾았을 때는 서른두 살하고도 286일이 지났다. 1964년 2월 25일 소니 리스튼(1932-1970)을 이기고 처음 챔피언이 됐을 때보다 더 빛나는 이 순간에 은퇴할 수는 없었을까. 1978년 레온 스핑크스(64)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고(곧 되찾기는 했지만) 래리 홈즈(68)와 트레버 버빅(1954-2006)에게 져 은퇴의 길에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은 추레할 뿐이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다른 방법으로 영원한 빛을 부어 주기로 결심했다. 1984년 알리는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파킨슨병과의 투쟁은 알리가 권투선수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숭고함을 지켜내고 위대함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리스튼을 이기고 챔피언이 된 다음 무슬림으로 개종한 알리는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했다. 선행을 하면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고 믿었다. 파킨슨병마저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들을 쫓아다니기를 좋아했지만 이제 그럴 수 없게 됐다. 신이 나에게 천국에 갈 기회를 주셨다."

 권투선수 알리가 킨샤사에서 챔피언 포먼에게 도전한 경기는 훗날 '정글의 혈투(rumble in the jungle)'로 회자되며 '마닐라의 전율(Thriller in Manilla -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세 번째 대결)'과 함께 전설로 남는다. 전성기의 스피드를 잃은 알리는 로프의 반동을 이용해 포먼의 펀치력을 줄이고 튼튼한 커버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피해나갔다. 포먼은 지쳤고, 알리는 8회전이 끝나기 직전에 결정타를 꽂는다.

 자수정처럼 시간을 응결시켜 버린 이 순간에 대해 노먼 메일러(1923-2007)보다 잘쓴 사람은 없다. 메일러는 1968년 '밤의 군대'로 논픽션 부문에서, 1979년 '사형집행인의 노래'로 픽션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작가다. 1975년 '격투(the Fight)'를 출간한 메일러는 이 책에서 알리가 프레이저와 켄 노턴(1943-2013)에 지고 의기소침해져 특유의 떠벌림을 잃어갈 때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메일러는 이 시기의 알리가 무엇보다도 '영적인 구원'을 필요로 할 때 '검은 심장'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기에 "만일 알리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면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으리라. 즉 알리는 아프리카의 심장부인 킨샤샤(콩고민주공화국콩고)로 원정을 가 포먼과 경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메일러는 '떠버리' 알리의 입심조차 포먼의 강렬한 침묵 앞에서 한낱 소음에 지나지 않았으며 도리어 자신의 약함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경기 전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리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포먼을 끌어들인 적응력과 뛰어난 두뇌플레이로 승리를 따냈다. 8라운드에서 포먼이 알리의 스트레이트를 맞고 캔버스에 나뒹구는 장면을 메일러는 이렇게 그렸다.

 "나가떨어진 포먼은 한동안 그의 눈을 알리에게 고정시키고 움직이지 못했다. 알리가 세계 제일의 복서라고 인정이라도 하듯이… 마치 임종의 순간 알리를 바라보듯 아무런 분노의 기미도 없이 알리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알리가 정글의 혈투에서 살아남은 지 43년, 세상을 등진 지 1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메일러의 역작에 버금가는 알리의 평전을 받아 들었다. 돌베개 출판사에서 낸 이 책의 제목은 '더 그레이티스트'다. 월터 딘 마이어스가 쓴 책을 이윤선이 번역했고 남궁인이 해제를 달았다. 매우 뛰어난 동시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알리의 세계를 넘나들며 풍부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운 책이다.

 책이 제시하는 생각의 열쇠 몇 개를 들어 설명하자면 알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용기'다. 인종차별, 베트남 전쟁, 냉전 등 미국 사회를 지배한 격동의 세월 한가운데를 꿋꿋이 걸어나간 위대한 전사의 유산이다. 마이어스가 보기에 알리의 용기는 두려움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을 직면하는 의지, 평생 위험에 맞서는 의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반드시 해내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또한 마이어스는 '패자들에 바치는 송가'로 알리의 위대한 승리와 투쟁에 대해서뿐 아니라 처절한 패배와 희생에 대해 말한다. 출판사는 이 책을 '태산만큼 큰 용기나 의지로도 피해 갈 수 없는 수렁에 대한 책이며, 빈손으로 돌아서는 수많은 패자들과 궁극적으로는 아무도 승리하기 힘든 비극적인 싸움에 바치는 송가'라고 소개한다. 이 책에는 번역투 문장이 많지만 참고 읽을 가치가 있다.

 "프로 권투란 피와 통증과 더 많은 고통이 있는 운동이다. 노골적인 잔인성이 당연한 운동이다. 그게 싫다면 그 선수는 그곳에 있지 말아야 한다. 이 사안의 부정적인 면은 분명하다. 상대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고자 하는 것이 권투 선수의 욕구라고 한다면 상대의 목표 또한 동일하다는 점이다. 인간의 몸이 치르는 희생은 충격적이다. 아치 무어가 말했듯이 '네 몸에는 일정 수의 격렬한 싸움의 흔적이 들어 있다'."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이윤선 옮김/돌베개/1만3500원>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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