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청년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보고 있다.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은 청년층의 신규 채용 기회를 빼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황·사정 고려없이 민간기업에 고용 강제할 수 있나
재계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에, 아니 경제를 그나마 지금 수준으로 지탱하는 데에 양질의 일자리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재계가 그 동안 학습과 경험을 통해 체득한 바로는 일자리창출은 기업에 있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기업이 앞으로 외형과 내실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인력채용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트럼프·아베는 돈 풀고 감세하는데…韓은 준조세걷겠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들고 나오고 비정규직이 일정수준을 넘는 기업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또 다른 준조세다. 기업으로선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아예 비정규직을 없애면 비정규직 자체가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에는 그 비용과 부담금을 내는 비용을 따져봐서 비용이 더 낮은 쪽을 선택할 수 있다. 장애인의무고용제도의 경우처럼 고용 대신 부담금을 낸 기업들이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아베의 경기부양정책의 핵심도 자국내 일자리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둘 모두 재정을 적극 투입하고 감세정책을 펴서 기업들에 일자리를 많이 늘리라면서 채찍보다는 당근을 많이 제시한다. 미국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 정규직을 일정 기준이되면 해고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논의는 경영계에서만 나오고 노사정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경제가 전자ㆍ자동차ㆍ중화학ㆍ항공물류 등 주력산업의 대표기업 3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18곳은 소요 재원과 필요성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곳은 해고기준 완화 등 노동 유연성을 전제로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것에 공감하지만 정규직 고용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밀어붙이기식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일자리 정책도 규제와 진흥의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용어와 통계부터 잘못됐다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용어와 통계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현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非)정규직이라는 말은 '정규직 아닌 일자리'를 통칭하는데 ▲한시적 근로자 또는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 용역, 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간접고용형태까지 포함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임시직 근로자(Temporary employment)만을 비정규직으로 보고 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기준에 따른 비정규직 비중은 32.5%지만, OECD 기준에 따른 비중은 22.3%로 차이가 난다.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으로 분류된 근로자들 대부분은 파견, 용역 등 아웃소싱 근로자들로서 이들을 비정규직에 포함시키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게 경영계의 판단이다. 경총은 "비정규직과 아웃소싱 활용은 최소한의 가격경쟁력과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의 자구책"이라며 "정규직 전환이 무리하게 추진되면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오히려 일자리 규모가 감소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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