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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요일에 푸는 해장傳]영혼을 데워주는 한 그릇, 순댓국

최종수정 2017.05.24 15:31 기사입력 2017.05.2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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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속 풀어주는 해장 음식을 찾아서…(6)순댓국

바야흐로 해장의 시대다. 저간에 벌어지는 일들, 신문 지면을 장식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죄다 서민들 맺히게 하는 것들뿐이니 그저 시원한 해장국 한 그릇이 절실하다. 해장국의 원래 이름은 숙취를 풀어준다는 해정(解酊)국이었지만 이제는 답답한 속을 풀어준다는 해장(解腸)국으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쓰린 배 부여잡고 아무 데서나 해장을 할 수는 없다. 정성껏 끓인 해장국 한 그릇은 지친 삶을 견디기 위한 한 잔 술 다음에 놓인다. 고단한 일상에 위안이자 어쩌면 유일한 호사다. 허투루 이 한 그릇을 대할 수 없는 이유다. 해장의 시대, 삶의 무게 깃들어 땀내 서린 해장 음식을 찾아 나섰다.

[水요일에 푸는 해장傳]영혼을 데워주는 한 그릇, 순댓국

◆서민의 해장 = 순대는 서민의 음식이다. 시장 어귀 간판도 없는 가게에서 큼직이 순대를 써는 아낙,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순대 한 입 베어 무는 남자의 구부정한 뒷모습에는 아등바등 하루를 견뎠던 고단한 삶의 무게가 얹혀있다. 그의 영혼을 위로해 줄 것은 무엇일까.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가게 안 가마솥에서 무심하게 끓고 있는 뽀얀 국물이 있으니까. 뚝배기에 순대, 머릿고기, 내장을 넣고 이 국물 부었다 비우고, 다시 붓는 토렴의 과정을 반복하면 한 그릇의 순댓국이 완성된다. 그래, 이 국물이면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숙취도, 잊을만하면 고개 드는 세상에 대한 분노도 잦아들겠지. 하여 지금 앞에 놓인 순댓국은 서민의 해장 음식이다.

휘휘 저어 진한 돼지 냄새 헤치고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면 다이나믹듀오의 '거품 안 넘치게 따라줘'가 귓가에 맴돈다. "날 데려가 내 영혼을 데워줄 곳에. 한동안 못 갔던 하동관에 가거나 청계천에 아바이 순대 먹으로 갈까나. 그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난 깨닫곤 해. 충분해. this is good life."

◆순대가 몽골에서 왔다고? = 순댓국은 돼지를 삶은 국물에 순대를 넣고 끓인 국이다. 순대를 알아야 순댓국이 보인다. 국어사전에서는 순대를 '돼지의 창자 속에 고기붙이, 두부, 숙주나물, 파, 선지, 당면, 표고버섯 따위를 이겨서 양념을 하여 넣고 양쪽 끝을 동여매고 삶아 익힌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순대의 '대'는 자루를 뜻하는 한자 대(袋)에서 왔다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어째서 '순'이 붙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만주어 '순타(sunta)'가 순대로 바뀌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몽골에서는 예로부터 유목생활을 하며 가축의 고기와 피를 창자에 넣어 먹었고 이를 순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순타가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과 함께 들어온 것이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아직 순대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다.
순대가 우리 기록에 처음 나오는 것은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다. 내용을 보면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빨아 숙주, 미나리, 무를 데쳐 배추김치와 함께 다져서 두부를 섞는다. 파, 생강, 마늘을 많이 다져 넣고 깨소금,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등 각색 양념을 넣고 돼지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는다. 부리를 동여매고 삶아 식혀서 썬다"고 돼 있다. 오늘날의 순대 조리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순대는 보통 돼지 창자로 만드는데 이 시의전서에는 민어 부레를 이용하는 어교순대도 함께 소개돼 있다. 지역별로 보면 함경도 지방에서는 많이 잡혔던 명태의 속을 채우는 명태순대가 있었다. 강원도에서는 오징어로 순대를 만들어 먹었다.

내장과 순대(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내장과 순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순대의 친구들 = 순댓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가면 주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순대만", "순대 빼기", "내장 빼기", "머리 빼기" 등 저마다 기호에 따른 호방한 외침들 사이로 주방에선 일사불란하게 순대, 내장, 머릿고기를 넣고 뺀다. 순대와 머릿고기는 간명하게 존재를 드러내지만 내장은 좀 면면이 좀 복잡하다. 눈에 띄는 것은 '암뽕'과 '오소리감투'. 암뽕은 암퇘지의 자궁이다. 흔히 '아기보', '새끼보' 등으로 불리는 부위다. 쫄깃한 식감이 특징인 이 부위를 씹으면 눅진한 돼지 특유의 맛이 혀에 스며든다. 전라도에서는 '암뽕순대'라는 음식도 있는데 암뽕의 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 암뽕과 돼지막창을 이용한 순대를 한 접시에 내는 것이다.

오소리감투는 돼지의 위다. 부드러운데 쫄깃쫄깃하고 씹으면 입안에 고소한 맛이 가득 찬다. 한 점 건져 먹으면 자연스럽게 소주 한 잔을 따르게 된다. 오소리감투란 이름이 붙은 이유에 대해 전해지는 얘기는 이렇다. 과거 마을에서 돼지를 잡을 때면 동네 사람 여럿이 고기를 손질하고 내장을 씻었다. 그런데 맛있는 위만 슬쩍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소리도 한 번 굴속으로 숨으면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자꾸 사라지기 일쑤인 이 부위가 동굴 속으로 숨으면 찾을 길 없는 오소리 같다고 여기게 됐다. 맛있는 부위가 슬그머니 사라지니 싸움도 잦았을 것이다. "내 오소리 내놔라", "난 오소리 본 적 없다" 이 모습이 벼슬을 놓고 다투는 것과 비슷해 벼슬을 뜻하는 감투가 붙어 '오소리감투'가 됐다고 한다.

◆영혼을 데워주는 한 그릇 = 다시 다이나믹듀오의 노래로 돌아와서. 그들이 영혼을 데워줄 것이라고 읊조렸던 청계천의 아바이 순대 가게 '전통 아바이순대'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영혼을 데워줄 순댓국집들을 주워섬기는 것은 다이나믹듀오의 랩만큼이나 숨 가쁘다. 우선 전통 아바이순대가 있던 자리에는 '청계 아바이순대'라는 집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여기서 을지로3가 쪽으로 조금 걷다보면 대창 순대로 명성이 자자한 '산수갑산'이 자리하고 있다. 삼수갑산이 아닌, 산수갑산이다. 을지로2가 쪽으로 더 가면 전통의 강호 '동원집'도 있다. 감잣국으로 유명하지만 순댓국도 일미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순댓국집은 어디일까. 대림동의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은 1957년 문을 연 노포다. 여기서 좀 더 가면 보라매역 인근의 '서일순대국'이 있다. 깔끔한 국물이 해장과 동시에 술을 부른다. 내친김에 강남까지 가보자. 뱅뱅사거리에는 '서초순대국'이라는 옥호로 이름을 떨쳤던 '남순남 순대국'이 있다. 삼성역 인근은 '박서방 순대국밥'이 평정했다. 이수역 앞 '남성집'은 순대가 들어 있지 않은 순댓국으로 정면승부를 펼친다. 여의도에서는 '화목순대국'이 깔끔한 내장 맛을 뽐낸다. 이곳은 광화문으로도 세력을 넓혔다. 약수역에는 40년 전통의 '약수순대국'이 있다.

굳이 이런 이름난 '맛집'을 찾지 않더라도. 순댓국집은 동네마다 있고 저마다 빠지지 않는 맛을 선사한다. 그 한 그릇을 먹고 'this is good life'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영혼이 데워진다고 여길 수만 있다면, 어디서 먹어도 순댓국은 좋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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