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봄이 완연하다. 여행을 떠나기 좋을 때다. 봄 여행 최고는 꽃구경이지만 맛의 계절이기도 하다. 때맞춰 피어나는 개나리, 벚꽃, 진달래처럼 봄 먹거리도 어기지 않고 찾아왔다. 봄은 어쩌면 혀로 기억되는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경남 통영 강구안 한 식당에서 맛본 도다리쑥국은 봄이면 어김없이 떠올리게 되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봄 도다리에 야생 쑥을 넣고 맑게 끓인 도다리쑥국 한 그릇이면 겨우내 잃은 입맛이 단박 살아난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나주 영산포 보리애국도 빼놓을 수 없다. 한 뼘도 자라지 않은 보리 싹을 잘라다가 홍어 애를 넣고 알싸하게 끓여낸 보리애국은 봄의 맛이다.

서해안 홍원항과 마량포구에는 펄떡이는 봄 효자가 있다. 바로 주꾸미다. 도다리와 함께 봄철 미각을 돋우는 대표적인 음식이 주꾸미다. 지역에 따라 쭈깨미, 쭈게미, 쭈껭이 등으로 불리는데, 이맘때가 가장 맛나다. 수온이 따뜻해지면 새우먹이를 찾아 서해안으로 몰려오는데 알이 가득하고 살이 통통하다. 낙지보다 연하고 달달하다. 쫀득한 식감이 문어를 넘볼 정도니 말이다.


사실 주꾸미는 그 명성에 비해 참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국내산 주꾸미 수확량이 적어 도시로 올라오는 양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도시에 있는 주꾸미식당은 야들야들하고 차진 식감이 사라진 냉동 주꾸미를 내놓는다. 그것도 매운 양념이 뒤범벅이 된 주꾸미에서는 진짜 주꾸미 맛을 느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제철 주꾸미를 만나려면 시기를 딱 맞춰 서해 갯마을을 찾아야 한다. 홍원항은 알려진 주꾸미 산지다. 봄이 되면 주꾸미 맛을 잊지 못한 여행객이 물밀듯 몰려오는 맛 여행 성지다.


다리 여덟 개의 팔완목(八腕目)에 속하는 주꾸미, 문어, 낙지는 크기만 다를 뿐 모습은 비슷하다. 그러나 다리 힘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낙지와 문어는 물 밖에 나오면 몸통을 가누지 못해 흐느적거리지만 주꾸미는 다르다. 물 밖에 던져 놓으면 벌떡 일어서기도 하니 말이다.


그물을 이용하긴 하지만 주꾸미를 잡는 방식은 이렇다. 소라, 고둥 껍데기를 사용한다. 껍데기들을 줄에 묶어 바다 밑에 가라앉혀 놓으며 자기 집인 줄 들어가 있다가 '아닌 밤중에 날벼락' 식으로 줄줄이 엮여 나온다. 갑판으로 끌려 올라온 주꾸미는 다리를 뻗어 몸을 빼낸다. 순간 갈퀴 끝을 소라 안에 집어넣어 주꾸미를 낚아챈다. 바닥에 떨어진 주꾸미는 여덟 개 다리에 힘을 모아 '벌떡쇼'를 선보인다. 물론 금방 쓰러지지만 그 힘은 놀랄 정도다.


어민들은 산채로 초장에 찍어먹는 주꾸미 맛을 최고로 치지만 외지인들은 주로 끓는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걸 즐긴다. 미나리, 쑥갓 등 갖은 채소를 넣고 들깨가루와 얼큰한 양념에 버무려 볶아내는 전골도 훌륭하다. 삼겹살과 함께 먹는 '주쌈 불고기', '곰장어'와 함께 먹는 섞어구이도 별미 중 별미로 통한다.


서해안에는 요즘 주꾸미 축제가 한창이다. 내달 2일까지 마량포구 일원에는 동백꽃 주꾸미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주꾸미가 풍년이라고 하니 넉넉한 산지인심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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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맛이 있는 고장엔 볼거리도 많다. 마량포구 인근에 있는 동백정에 오르면 낙조와 동백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덤으로 얻는다.
혀는 말한다. 봄이 맛있다고. 찰나의 봄, 제철 먹거리를 찾아 바지런히 맛 여행을 떠나보시길….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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