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24시간 동안 여러분의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 되는지요. 8시간이라고 본다면 하루의 3분의1을 자는 것입니다. 먹고 이동하고 일하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비중이 매우 큽니다. 잠을 잘 자야 몸의 균형이 유지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상식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곤 합니다. 정치는 맘에 안 들고, 사회는 갈수록 힘들고,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가정 내에서도 복잡한 일들이 생기죠.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수면장애 중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방치할 경우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심하면 사망까지 이를 수 있어 환자에게 맞춤형 치료가 필요합니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여성은 임신과 출산, 갱년기 등의 영향으로 남성보다 수면장애가 자주 나타난다"며 "특히 폐경에 접어들면 여성호르몬의 변화로 수면과 관련 있는 신경전달 물질 분비가 떨어져 밤에 잠에 들지 못하거나 새벽에 자주 깨는 등 불면증이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더욱이 심혈관질환 발생으로 인한 사망률을 높입니다. 자연발생(대조군)보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가진 사람의 경우 심혈관질환 사망률이 약 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뇌졸중 또는 심근경색이 있으면서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할 경우 사망률이 각각 2배, 4배로 조사됐습니다.
신 교수는 "수면무호흡증이 의심된다면 수면다원검사로 정확한 수면 상태와 수면무호흡의 정도, 심각한 정도를 평가해 최적화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며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은 주로 잘 때만 혀 근육이 쳐져서 기도를 막기 때문에 수술적 치료 보다 지속적양압치료(CPAP)나 구강 내장치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빛을 피하라"=수면 중 약한 빛에 노출되는 경우 뇌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규명됐습니다. 고려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윤호경 교수, 예방의학과 이은일 교수, 가천의대 강승걸 교수가 공동으로 최근 연구를 통해 이런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이헌정 교수팀이 젊은 남성 20명을 대상으로 연구해서 나온 것인데요, 환경을 통제한 수면검사실에서 수면을 취한 후 다음날 기능적 뇌자기공명영상검사(fMRI)를 시행해 뇌기능의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이틀은 완전히 빛이 차단된 상태에서, 3일째에 약한 빛(5 또는 10lux)에 노출된 상태에서 수면을 취한 뒤 낮 시간동안 뇌기능을 살펴봤습니다.
연구 결과 5럭스(lux) 정도의 빛에서는 큰 영향이 없었는데 10lux 정도의 빛에 노출될 경우 다음날 낮 시간의 뇌기능 상태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0lux는 물체를 겨우 인식할 정도의 약한 빛입니다. 도시에서는 범죄예방이나 늦은 시간 통행을 위해 불을 밝힌 거리가 대세여서 전문가들은 실내로 새어드는 빛을 차단하고 잠을 청할 것을 추천합니다. 이헌정 교수는 "침실 외부에서 침입광이 있는 경우에는 암막커튼 등으로 수면중 외부의 빛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 좋다"며 "야간에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빛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교수는 "스마트폰 등 최근 늘어나는 디스플레이장치에 의해 증가하는 빛 공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빛 공해가 인체에 나쁠 것이라는 추정은 많았지만 이번 연구와 같이 직접적 영향을 규명한 것은 처음"이라며 "빛 공해에 대한 심각성은 물론 빛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렘(REM)수면이 중요하다=새벽에 주로 일어나는 렘(REM)수면이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잠은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과 비렘(non-REM) 수면으로 구분합니다. 렘수면은 안구의 빠른 운동으로 알 수 있습니다. 저녁에 잠이 들고 새벽에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을 렘수면이라고 부릅니다.
렘수면의 기능을 두고 그동안 학계에서는 두 가지에 주목했습니다. 하나는 신경세포의 항상성에 관여한다는 측과 기억의 공고성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국내 연구팀이 실험용 쥐의 고해상도 뇌파 맵을 이용해 렘수면을 분석한 결과 항상성과 공고성 모두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규명됐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치매DTC융합연구단 최지현 박사연구팀이 이번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최 박사는 "렘수면이 부족하면 기억 공고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면의 양이 적은 나라에 속한다"며 "특히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에는 렘수면 상태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적정한 잠을 자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신경세포 항상성과 기억 공고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렘수면은 수면의 후반기에 나타나는 흥미로운 수면 단계입니다. 깨어있을 때와 비슷한 패턴의 뇌파가 관찰됩니다. 총 수면시간 중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뇌 활동을 동시에 측정하는 것이 어려워 렘수면의 기능이 무엇인지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최 박사팀은 렘수면의 기능을 규명하기 위해 뇌파를 활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특정 뇌파마다 그 역할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수면 중 나타나는 크고 느린 뇌파는 뇌세포의 피로를 줄여줍니다. 간헐적으로 작고 빠르게 나타나는 뇌파는 기억 형성 등의 뇌 활동을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렘수면 동안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팀은 마우스 뇌에 자체 제작한 38채널 어레이형 전극을 삽입했습니다. 고해상도 뇌파 맵을 측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수면이 부족하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특정 뇌파가 더 활성화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급성 수면 결핍의 경우 신경세포 항상성이 영향을 받고 만성 수면 결핍의 경우 기억 공고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며칠 정도 잠을 잘 못 잤다면 신경세포의 항상성에 영향을 끼치는데 오랫동안 수면 부족에 빠지면 기억의 공고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렘수면이 부족할 때 기억 공고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치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변화하면서 치매환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최 박사는 "이번 연구는 약물이나 유전자 변형 없이도 KIST에서 자체 개발한 고해상도 뇌파 맵을 이용해 얻은 결과"라며 "앞으로 치매를 비롯한 특정 질병과 수면 질환 간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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