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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우라까이'하니 소설이 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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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물결 속 거대한 쥐 한마리가 자원외교를 생각했다" …복붙·카톡·익명, 소설의 젊은 반란이 번진다


소설 창작의 영역을 집필에서 복붙(복사+붙이기)까지 확장한 복붙소설은 오롯이 당시 상황만을 담아낸 신문기사의 제목만으로 직조했음에도 적나라하게 그 순간의 풍경을 묘사해내고 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창작의 영역을 집필에서 복붙(복사+붙이기)까지 확장한 복붙소설은 오롯이 당시 상황만을 담아낸 신문기사의 제목만으로 직조했음에도 적나라하게 그 순간의 풍경을 묘사해내고 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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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인생을 구라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구라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서문 중에서

누구보다 정열적 인생을 살았던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은 영감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으므로 직접 찾으러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요즘 같은 시국엔 영감을 후려치는 충격과 경악이 뉴스를 통해 매일 같이 업데이트되고 있어 일반 시민은 물론이요, 사회 저변에서 이를 목도하며 글 쓰는 이들의 피로감이 병증에 가깝다는 호소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담는 그릇으로서 소설 또한 다양한 변화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눈에 띤 ‘복붙소설’, ‘카톡소설’, 그리고 ‘익명소설’의 등장은 미세하되 파격적인 소설의 변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책 제목인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연설회에서 당시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후보측의 파상 공세에 격앙된 어조로 호소하며 발언한 문장이었으나 이후 MB정권 내내 공약이행이 되지 않을 때마다 패러디 소재로 회자되어왔다. 사진 =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쳐

책 제목인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연설회에서 당시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후보측의 파상 공세에 격앙된 어조로 호소하며 발언한 문장이었으나 이후 MB정권 내내 공약이행이 되지 않을 때마다 패러디 소재로 회자되어왔다. 사진 =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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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는 봤나, 복붙소설

이역만리 슬로베니아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바깥세계에서 바라본 고국의 내밀한 속살을 기발한 발상으로 비집고 들어가 골간을 쉴 새 없이 해체하고, 재조립해 이번에 내놓은 소설집 제목은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이며, 수록작 중 하나인 ‘우라까이’는 제목부터 베끼기를 천명한 작품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익숙함 또는 기시감은 차치하고, 먼저 그 뜻을 들여다보자면 일본어 우라가에스(裏反す, 뒤집기)에서 유래한 ‘우라까이’는 베껴 쓴 기사를 가리키는 언론계 은어로, 작가 강병융은 MB정권 시절 쏟아져 나온 신문기사 제목을 하나하나 갖다 붙여 한 편의 기이한 소설을 완성했다.
표제작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를 통해 '쥐'를 슬라이스 미트로 만들어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강병융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닭'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으나 한 인터뷰에서 막상 쓰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 = 한겨레출판

표제작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를 통해 '쥐'를 슬라이스 미트로 만들어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강병융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닭'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으나 한 인터뷰에서 막상 쓰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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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의 물결 속 보통 사람들에게는 좀 생소할 수도 있는 거대한 쥐 한 마리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자원외교로 살길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소설 ‘우라까이’ 중에서

그는 이 소설을 지칭하기 위해 ‘복붙소설’이란 말을 창조했고, 소설 내내 단 한 문장도 새롭게 쓰지 않았다. 오로지 수만 번의 기사 검색을 통해 직조한 문장은 우리가 겪어낸 사실보다 더 적나라하다. 작가는 쥐에 이어 다음엔 닭에 대해 쓰겠다고 호언했지만, 그 후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목도하며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을까? 확실한 건 이 전대미문의 ‘복붙소설’이 주는 쾌감은 지어낸 이야기들보다 훨씬 풍부하다는 점이다.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로 이뤄진 소설은 그간 서간문학의 형태로 존재해왔으나, 카톡소설은 보다 솔직하고 가감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 전달 속도를 독자가 이미 익히 알고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소설의 한 형태로 인식된다. 사진 = 박하 출판사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로 이뤄진 소설은 그간 서간문학의 형태로 존재해왔으나, 카톡소설은 보다 솔직하고 가감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 전달 속도를 독자가 이미 익히 알고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소설의 한 형태로 인식된다. 사진 = 박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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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어 필요 없이 할 말만 한다, 카톡소설

30대 여성의 삶에서 결혼과 육아의 기회를 박탈하고 직장생활의 평등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는 대체 그들을 어디로 몰고 가는 것일까? 대한민국에 내던져진 두 여자, 수미와 민정의 불운과 오지랖에서 촉발된 방대한 카톡의 서사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는 여성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누구의 딸, 누구의 여자, 누구의 아내로 재편될 수 있는지, 김나리, 김현진 작가는 담담하되 날카로운 묘사를 통해 그 사례와 상황을 낱낱이 까뒤집는다.

소설의 제목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선우(이병헌)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최종적으로 보스 강사장(김영철)에게 묻는 대사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있다. 소설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두 여자에게 벌어지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하지만, 소설의 물음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할까. 사진 = 영화 '달콤한 인생' 스틸 컷

소설의 제목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선우(이병헌)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최종적으로 보스 강사장(김영철)에게 묻는 대사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있다. 소설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두 여자에게 벌어지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하지만, 소설의 물음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할까. 사진 = 영화 '달콤한 인생'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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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집이 코앞이라 간신히 그를 뿌리칠 수 있었어요. 내게는 목숨의 위협이었지만 어차피 그에게는 귀갓길의 가벼운 장난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는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가 밤늦게 다니니까 하나님이 벌을 주신 거다.”

- 소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중에서

김현진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던 것은 어두운 서랍 속의 이야기라고 고백하며, 김나리 작가는 더 많이 말하고 언제든 호소하면 그 목소리가 구원의 재료가 될 거라 슬픔에 잠긴 이를 위로한다. 아버지의 정신적 학대, 모르는 남자의 기습적 추행, 자신의 자존감을 여자를 폭행하며 찾으려 드는 남자까지, 소설이 고발하는 현실은 너무도 촘촘하고, 그래서 더 아리다.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창작자로서 편견과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익명소설을 통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닉네임과 기발한 작품으로 어느정도 해소된 양상을 보인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창작자로서 편견과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익명소설을 통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닉네임과 기발한 작품으로 어느정도 해소된 양상을 보인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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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음으로부터 자유한 서사, 익명소설

“브루투스와 카이사르! 그대 이름 역시 아름답소. 두 이름의 무게를 달아보시오. 그대 이름도 그만큼 무겁지 않소?” 브루투스를 부추기는 카시우스의 꾐을 셰익스피어는 ‘이름의 무게’로 표현하며 순식간에 시기심에 불을 붙였지만, 오히려 그 이름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중은 익명이란 베일에 자신을 가리고 기탄없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이에 익명소설 작가모임은 ‘익명소설’을 통해 억압과 검열로부터 자유롭게 새로운 소설을 써내려갔고,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10명의 소설가는 자신의 크고 작음에 연연치 않고 자유로운 ‘익명소설’을 선보였다.

제목은 '익명소설', 작가는 '익명소설 작가모임' 정말이지 간명하게 자신을 밝히되 작품에 보다 집중해주길 바라는 작가들의 바람은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사진 = 은행나무

제목은 '익명소설', 작가는 '익명소설 작가모임' 정말이지 간명하게 자신을 밝히되 작품에 보다 집중해주길 바라는 작가들의 바람은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사진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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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고 미안하단 말도 하고 싶다. 너희들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싶었다.”

- 소설 ‘셋을 위한 플롯’ 중에서

‘익명소설’의 기획자는 작가들의 핏속, 피로와 두려움의 농도를 낮추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배경이, 주인공이 한국인이 아니면 고쳐달라는 요구와 정치적 풍자를 걷어내라는 압박, 장르적 요소가 풍부하다 싶으면 덮어버리는 규제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던 창작자들의 열망은 신선하고 이채로운 시도로 이름이 아닌 문장으로 치환돼 독자와 겨루려 가면을 쓴 채 문단 저편으로부터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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