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법제화, 여군 입대 여건 마련…신병 30%가 여성, "혼숙이 형제애 키운다" 여론도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박충훈 기자] 20년전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열리는 야외영화제. 두근대는 마음으로 봤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 지아이제인(G.I. Jane). 주인공이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씰 최초의 여성 대원으로 탄생하는 스토리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때 저는 군 입대를 2달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나름 ‘저 사람도 열심히 군에 적응하는 데 나라고 못할 거 있겠나’ 라는 호기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아~ 왜 남자만 군대가고 여자는 안가는거냐고~.”
그후로 20년이 흘러 저는 네덜란드가 노르웨이에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국가 중 두 번째로 여성 징병제를 실시한다는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허얼~ 저런 선진국들이 여자를 징병하는군.” 어찌 된 사연인지 궁금하더군요. 우선 네덜란드에 앞서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노르웨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노르웨이는 무엇보다 남녀의 평등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한 수준이더군요. 노르웨이는 성숙한 성평등 문화를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국제금융기구(IMF)가 2013년 여성의 경제적 성과를 측정한 자료를 참조해보자면 노르웨이의 여성 참여율은 압도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노르웨이는 2006년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여성 비율이 최소 40%를 유지토록 하는 쿼터제를 법제화했습니다.
이외에도 수십년간에 걸쳐 성차별 철폐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죠. 1978년에는 성평등을 위해 공직자 임원의 여성 비율을 높였습니다. 또 반차별 옴부즈만 제도를 운영하며 성별과 종교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군대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노르웨이는 지난 40년동안 여성들이 자율적으로 입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여성이 전투기 조종사, 헬리콥터 조종사, 잠수함 지휘관으로 활약할 수 있게 했죠. 1995년 솔베이그 크레이(Solveig Krey)라는 여성 장교가 세계 최초로 잠수함 지휘관에 임명됐을 때 주요 외신이 이를 기사화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잠수함에서 여성 지휘관이 근무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여겨졌었거든요.
노르웨이는 201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중 처음으로 징병 대상을 여성을 확대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성만 특별히 더 뽑는다기 보다는 성별 상관없이 뽑게 됐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19~44세의 건강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신체검사를 통해 군대에 복무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1998년생들이 입영 대상이 되겠군요.
징병제라지만 군 입대 경쟁률이 6대 1 정도로 치열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모병제에 가깝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선출된 신병 중 3분의 1이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2015년 정규군의 여성 비율이 17%였던 반면 징병제가 실시된 이듬해에는 비율이 33%로 확 늘었습니다. 또 군사대학인 노르웨이 방위 공과대학은 올해 지원자 중 여성이 24.5%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의 남녀 병사는 같은 내무반을 씁니다. 여성 2명에 남성 4명이 의무적으로 한 숙소에 배치됩니다. 아침 저녁 점호도 함께 받습니다. 징병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이전인 2014년 현지에서 설문 조사를 해보니 82%의 응답자들이 혼숙(?) 내무반이 '형제 같은 관계'를 발전 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군 가산제처럼 노르웨이도 군 복무 경력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고 합니다. 노르웨이 기업들이 선호하는 경력 중 5위가 군 복무라고 합니다. 1~4위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유명 통신사, 경영 컨설팅 회사 다음이 군대라고 하니 말 다 했죠.
혼성 내무반은 해외에서도 화제를 불러 일으켜 한 매체가 직접 남녀 군인의 병영 생활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그렇지만 이건 군사 당국의 대외적인 홍보 전략 중 하나로 봐도 무방할 겁니다. 멋지고 신나는 생활을 담은 군 홍보 콘텐츠는 만국 공통사항이죠.
우리나라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훈련병의 하루를 소개하며 어느정도 '미화'를 하듯이 말입니다. (카메라가 들이닥치기 전 내무반 바닥을 치약으로 닦으며 ‘미싱하우스’하는 모습은 TV에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몸매 좋은 남녀가 서로 등을 지고 옷을 갈아입는 모습에 많은 젊은이들이 혹하겠죠.
이는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미녀 여군을 내세우긴 마찬가지라네요.(ㅍㅍㅅㅅ, ‘기집애들아 군대가라? 이스라엘 여군의 허상과 진실’ http://ppss.kr/archives/3290 참조) 이런 영상만 보고 노르웨이의 양성 평등을 겉핥기로 논하면 곤란합니다.
한편 노르웨이 정부는 여군 징병제가 군대의 운용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병력의 다양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도 지난해 여군이 복무하는 부대를 방문해서 "국방에 있어 육체적 능력이나 남성 호르몬보다는 지혜와 멋진 해결법을 잘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남녀의 평균적인 육체적 능력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정보 수집' 등 여군이 맹활약할 수 있는 복무 분야를 찾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도 성 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기반이 선결된다면 여군 징병제를 충분히 시행할 수 있습니다. 애인끼리 다정히 손잡고 병영 입대하는 날이 우리나라에도 찾아올까요.
디지털뉴스본부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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