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충무로에서]트럼프 시대의 희망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
 이런저런 학회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학회들이 보낸 메일을 많이 받습니다. 대개 논문 모집이나 학회 일정과 같은 뻔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제목만 건성으로 읽고 넘기곤 합니다. 그러나 지난 1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무슬림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곱 나라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고 난민신청 프로그램을 정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3769호를 발표한 이후 전에 보지 못했던 내용의 메일들이 속속 날아왔고 그 메일들을 둘러 싼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경영학 학술단체는 매니지먼트 학회(Academy of Management)입니다. 전통과 규모 뿐 아니라 학술지의 수준에서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학회입니다. 행정명령이 발표된 며칠 뒤, 이 학회의 회장명의로 날아온 메일은 행정명령에 대한 학회의 실무적인 대응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여름 미국에서 개최될 학회에 오지 못하게 된 회원들은 참석하지 않더라도 논문발표를 한 것으로 간주하고, 원격발표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조목조목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일에 쓰인 한 문장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임원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킵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해 불만은 있지만, 직접 표현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의미로도 해설될 수 있는 이 문장이었지만, 회원들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 엄중한 시기에 적합하지 않은 너무 비겁하고 애매한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일부 회원들은 이것이 트럼프 지지로까지 해석될 정도라고 비판했습니다. 회장을 맡고 있는 토론토대학의 맥가한 교수는 개인적으로 이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히기까지 했지만,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회원들이 이처럼 분노한 것은, 다른 많은 학술단체들은 매니지먼트학회와는 달리 훨씬 더 직접적이고 명백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학회(ASA)는 행정명령에 반대한다는 명료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학회 회원들이 힘을 모아 국회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하자고 권유했습니다. 이공계열의 학회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학과 공학 분야의 거의 모든 주요 학회를 망라한 171개 학회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와 연대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서 그들은 과학의 발전이 개방성, 투명성 그리고 사람과 지식의 자유로운 교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미국은 바로 이런 덕목을 지켜 크게 성장한 국가라고 썼습니다. 이 편지는 앞으로도 미국이 과학기술분야에서 리더십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런 가치를 침해하는 행정명령을 당장 철회해야만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트럼프 행정명령의 여파는 한 연방판사의 판결에 의해 잠시 그 효력을 멈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런 충돌과 갈등은 계속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미국의 국익에 자유와 개방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폐쇄적인 이익추구가 더 효과적일 것인지에 대해 미국인들 사이에 제법 팽팽한 의견대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사태를 통해 결국 개방성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얻었습니다. 미국이라고 해서 정부에게 반대의견을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는 정부의 자금지원이 절대적이고, 트럼프 정부라면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블랙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학자들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까지 자신의 믿음을 언어로 표출하는 용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결국엔 언제나 그 작은 용기들이 승리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top버튼

한 눈에 보는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