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에 깃든 숨결의 서사시
사물과 사물의 상호 연관성 주목
서양적 재료 안에 동양적 사상 담아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화제 속에 종영한 텔레비전 드라마 '도깨비'에는 이승을 떠나기 전에 머무르는 찻집이 등장한다. 조그마한 찻잔에 담긴 차(茶)를 다 마시고 나면 이승에서의 기억이 사라진다. 극중 저승사자는 어두운 저승길을 앞둔 이와 서로 마주앉아 깊은 대화를 나눈다.
여기 어둠 속에 찻잔 하나가 빛을 낸다. 서양화가인 이동수 화백(51)은 '플로우-보울(Flow-Bowl)'시리즈를 통해 하찮은 그릇 한 점에도 너와 나의 연(緣)이 있다고 말한다. 이 화백은 "사물 자체를 분석과 주의(attention)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부분보다 전체' 혹은 사물과의 상호 연관성에 주목한다.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지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사물에 혼(魂)이 깃든다는 도깨비와도 같다. 또한 인생의 긴 숨결이자 역사를 담은 거대한 한 편의 서사시다. 더구나 그의 작업실은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의 선사유적박물관을 마주보고 있다. 이곳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신석기인들이 살던 호수지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화백은 "그릇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공간 속을 흐르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은 보는 사람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의 흐름을 담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된 그릇은 신석기시대 산물인 빗살무늬토기처럼 요철(凹凸)이 매우 섬세하다. 그는 "그릇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붓질을 한다. 선을 대고 한 번에 하면 세련미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도자기를 빚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서양의 재료를 택했지만, 작품 안에는 동양적 세계관을 담는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지난 2010년부터 아트파리, 비엔나 페어, 스콥 바젤, 콘텍스트 마이애미, 슈트가르트 아트페어, 아테네아트, 아트뉴욕, LA아트쇼 등 유수한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팝아트로 대변되는 미국보다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에서 반응이 더 좋았다.
이 화백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찻잔에 이야기를 담듯 마주앉아 교감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공명(共鳴) 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악기의 한 줄을 건드리면 공명에 의해 다른 줄이 울리게 되듯, 모든 것은 서로에게 공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지난 1일 문을 연 이 화백의 '숨결의 시(始)전'은 28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갤러리조은에서 열린다. 작가의 신작 스물세 점을 감상할 기회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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