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의 현판글씨는 창의문(彰義門)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부른다. 딱딱한 그리고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의(義)자가 들어간 규격적인 이름은 별로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성문 위에서 보랏빛까지 머금은 아름다운 저녁노을(紫霞)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자리인지라 모두가 자하문으로 불렀다. 생각은 또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해인사 일주문의‘홍하문(紅霞門)’편액도 떠오른다. 작은 세로글씨를 숨기듯이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붙여 놓았다. 아름다운 붉은 노을빛(紅霞)을 감상하기 좋은 자리임을 알리는 가이드 노릇까지 맡겼다. 유가와 불가의 표면적인 엄격함 뒤로 항상 이런 감성적 언어가 같이 했다. 예(禮, 위계질서)가 있으면 악(樂, 함께 즐김)도 있고 긴(緊, 팽팽함)이 있으면 완(緩, 느슨함)도 함께 있어야 사람사는 곳인 까닭이다.
서울성곽은 오백년 동안 자기 몫을 충실히 다했다. 한양을 지켜준 울타리였다. 이 정도의 높이와 시설로 수도를 방어할 수 있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니. 호랑이 담배 먹던 때도 아니고 불과 일백여년 전까지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성곽은 그대로 변함없는데 무기가 창칼에서 총과 대포로 바뀌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이 변해버린다면 나 역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성도 군사용에서 관광용으로 완전히 용도가 바뀌었다.
옛사람들은 약 20km인 한양도성 전체를 봄 여름이면 무리를 지어 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했다고 유본예(1777~1842)는『한경지략』에서 기록했다. 이른 아침 첫걸음을 떼면 해질 무렵 출발지로 되돌아왔던 순성(巡城)길이다. 그때도 살벌한 군사적 목적 외에 훈훈한 관광용을 겸했던 것이다. 산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 바다도 그렇다. 군항인 동시에 크루즈선 정박을 겸하는 그런 항구는 더 친밀감을 줄 것 같다. 지방에 있는 공항들도 군용과 민간용을 겸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다용도일 때 공간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지는 까닭이다.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사면이 좀 가파르긴 했지만 잘 닦여진 길도 “바빠서” 운동량이 부족한 탓인지 모두가 힘들어 한다. 산성 따라 줄을 지어 걷는 이들은 대부분 등산복으로 무장한 중년층이었다. 익숙한 자세로 날렵한 걸음이다. 우리 팀이 제일 젊은 것 같은데 쉼터마다 쉬어야 했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바위에 도착한 후 삼청공원 방향으로 내려왔다. “바쁘다”는 B가 식당에 앉자마자 점심을 후다닥 먹고는 알바 때문에 먼저 가야한다며 자리를 뜬다. 두 번째 답사일정은 동대문 근처 낙산공원에서 말바위 쪽으로 오는 한 시간짜리 길을 선택했다. 이런 식이라면 12번은 와야 성곽길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야말로 슬로우시티가 되는 것이다. 올가을의 취업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그룹스터디에 참여하느라 “바빠서” 두 번째 답사는 참석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C의 말도 얼마 전에 듣게 되었다.
밴드 형식을 갖추어도 채울 내용은 더 문제다. 먹방처럼 부암동의 만두가 맛있다는 잡담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모두를 묶을 만한 공동관심사를 발굴해야 한다. 병역의무를 마친 예비역까지 있으니 나이 편차도 있고 성별은 말할 것도 없고 전공도 다르고 출신지역도 각각이다. 궁리 끝에 보편적 공감대로서 ‘여행’을 설정했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여행’보다는‘답사’라는 단어가 더 좋아 보여 밴드이름을 “답사만리”라고 붙였다. 여행과 관련된 짧은 글을 퍼 날랐다. 읽기만 하고 “조금 바빠서” 조용히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덜 바빠서” 더러 댓글도 붙는다. 댓글에 또 댓글을 또 달며 추임새를 넣어주며 머리를 식히는 ‘휴(休, 쉼)파’도 생겼다.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바쁘다. 바쁘니까 또 아프다.‘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해도 그 순간뿐이다. 힐링을 위해 명상수행센터를 찾고 템플스테이와 함께 참선을 해도 잠시 그때뿐이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 “아프게” 또 “바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