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4시10분 가결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찬반투표 결과는 향후 정국을 예측할 가늠좌로 불린다. '압도적인' 찬성 표결 결과에 따라 분당 '초읽기'에 들어간 새누리당의 운명 뿐만 아니라 '탄핵 정국' '대선 정국'을 둘러싼 야권의 주도권 다툼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이변의 주인공은 與 '샤이 친박'= 이날 투표에선 가결의 열쇠를 쥔 새누리당의 '숨은 탄핵파'가 대거 찬성 쪽으로 이탈하면서 탄핵안이 가볍게 통과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야권의 172표와 여당 비주류의 35표 외에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에서 27표가 찬성 쪽으로 이탈한 것으로 분석했다. 전체 128명의 여당 의원 중 절반 가까운 62명이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탄핵추진실무단장인 이춘석 의원도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찬성표가) 220명이 넘으면 비박(비박근혜)뿐 아니라 친박도 상당수 넘어오는 것이기에, 앞으로 정치지형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고 내다봤다. 야권은 220표 이상을 확보하는 게 최종 목표였다. 이 의원은 이를 가리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라고 일컬었다.
막판까지 표계산이 치열하게 벌어진 이번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되면서 향후 새누리당의 붕괴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히지 않던 친박 일부가 찬성표를 던지면서 친박은 사실상 '폐족'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새누리당 해체와 새로운 보수정당 재창당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비박계의 어깨에는 힘이 실리게 됐다.
◆與 초·재선 83명 '숨은 표심' 폭발…애초 예상된 210표 크게 웃돌아= 무엇보다 차기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른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내년 5~6월로 예상되는 대선을 앞두고 가벼운 발걸음을 떼게 됐다. 탄핵안 통과는 문 전 대표의 대세론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표결 직전 다양한 경로로 예측해본 여당 의원들의 찬성표는 195~230표였다. 여당 비주류인 비박 의원들은 표결에 앞서 최대치를 210표로 잡았다. 가까스로 탄핵안이 가결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일부 의원들은 이보다 10~20표 많은 '+α'를 점쳤다. 무소속을 포함한 야권의 찬성표는 최대 172표였다. 가결 정족수인 200표를 채우기 위해선 적어도 여당 의원 28명이 찬성표를 던져야하는 상황이었다.
이날 오전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에 참석한 여당 의원은 33명 뿐이었다. 자칫 야권에서 반란표라도 등장하면 가결은 물 건너갈 수 있었다. 비상시국위는 친박 의원 중 '숨은 탄핵 찬성파'가 적어도 10명 안팎이라고 추산했다.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막판까지 고심하거나 눈치를 본 의원들은 50명이 넘었다. 특히 83명의 초ㆍ재선 의원들은 가장 큰 변수였다. 대다수가 지난 4ㆍ13총선에서 친박 지도부의 입김에 따라 공천을 받았다. 이들은 "소신에 따라 투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도부의 눈치를 보며 공개적으로 언급하진 못했다.
◆'문재인 대망론' 급부상…與 재당창 가속, 野 권력투쟁 본격화= 이 같은 여당 부동층 의원들이 이날 표결 결과에서 이변을 연출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친박 지도부는 막판까지 설득작업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 의원들이 꺼려하던 탄핵안의 '세월호 7시간' 적시도 변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방청석에 자리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이 일부 여당 의원들의 마음과 통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동안 야당은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가결 정족수를 조금 넘길 것으로 파악된다"며 "(여당) 초ㆍ재선 의원들이 국민만 보고 앞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가운데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최초 제안한 '투표 인증샷'은 이탈표를 방지하는 집단속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당 38명 전원과 일부 민주당ㆍ새누리당 비박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판세가 달라졌다.촛불 민심에 따른 '탄핵 후폭풍'을 염려한 상당수 의원들이 보신용으로 인증샷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탄핵에 찬성하면서도 의사를 밝히지 않던 '숨은 탄핵파'가 가세하면서 향후 정계 개편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탄핵 찬성이 '배신'으로 비치는 게 부담스러웠던 일부 여당 의원들이 찬성 의사를 밝힌 것은 보수정당의 생존을 모색하고 그들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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