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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럼]벌레와 곤충(昆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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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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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철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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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벌레’ 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요? ‘벌레’라는 단어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크기가 작고 다리가 많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물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린아이들과 벌레를 이야기해 보면 매우 즐거운 표정을 짓곤 한다. 아이들은 작고, 귀여우며, 자기 손에 올려놓았을 때 살살 간지럼을 태우며 기어 다니는 동물을 생각한다. 어른과 아이들의 생각이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이들은 동화책 등에서 예쁘고 귀여운 곤충의 애벌레, 특히 나비의 애벌레를 통해 벌레를 배우기 때문인 것 같다.

갑자기 ‘벌레’ 와 ‘곤충’ 이야기를 하는 것은 벌레와 곤충에 대해 정확히 알면 무지에서 비롯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이들 생물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먼저 사전상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벌레'는 곤충을 비롯,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버러지·충(蟲))이라고 하고, '곤충'은 곤충강에 속한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사실 벌레라는 말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말로 '훈민정음해례본(세종 28년(1446년))'에 ‘벌벌 기다’라는 말에서 온 ‘벌에’가 벌레가 됐다고 한다. 또한 곤충(昆蟲)의 경우, 곤(昆)은 '훈몽자회'에 ‘백 가지 벌레를 총칭한다’ 고 적혀 있고 충(蟲)은 벌레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과거에는 뱀, 개구리, 도마뱀이나 다리가 많은 절지동물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었는데, 이 단어가 서양과학과 접목되면서 ‘몸이 머리, 가슴, 배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2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변태(變態)를 하는 동물’ 을 의미하는 좀 더 구체적이고 학술적인 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곤충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생물로 전 지구상에 약 80만종이 알려져 있으며 현재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 164만종(동물 110만종, 식물 36만종) 중의 50%를, 동물 중의 80%를 차지하고 있다(Catalogue of Life, 2015).

하등한 동물인 곤충이 이처럼 전체 생물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곤충의 뛰어난 환경 적응력, 작은 몸, 날 수 있는 능력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변태이다.

곤충은 ‘키틴질’이라는 딱딱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어서 더 큰 크기로 성장하기 위해서 낡은 껍데기를 벗는 변태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몸의 형태와 기능이 변한다. 이 변태과정은 내용에 따라 애벌레와 어른벌레가 날개를 제외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불완전탈바꿈(불완전변태)과 애벌레와 어른벌레가 완전히 달라지는 완전탈바꿈(완전변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불완전탈바꿈 곤충은 알·애벌레(약충)·어른벌레(성충)의 3단계로 성장하는 매미, 노린재, 메뚜기, 잠자리 등이 있으며, 완전탈바꿈 곤충은 알·애벌레(유충)·번데기(용)·어른벌레(성충)의 4단계를 거치며 성장하는 나비, 나방, 딱정벌레, 벌, 파리 등이 있다.
주목할 것은 완전탈바꿈 곤충이 전 세계 생물종의 40%, 곤충 종에서는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왜 완전탈바꿈 곤충이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을까.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배추 잎을 먹지만 나비는 꿀을 먹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먹이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애벌레는 배추밭에 살지만 나비는 꽃밭을 날아다니므로 서로의 ‘서식공간’이 달라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보다 더한 부모와 자식 간의 경쟁을 피하며 주변 환경을 공유하는 방법은 ‘시간’이다. 대부분의 완전탈바꿈 곤충은 부모와 자식이 동시간대에 살지 않는다. 즉 생존시간이 겹치지 않으며, 같은 공간에 서식하지 않고, 같은 먹이를 먹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제한된 환경자원을 부모와 자식 간에도 공유하지 않고 경쟁을 피하는 곤충의 진화방식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곤충이 3억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구상에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곤충만이 가지는 특별한 ‘번데기’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번데기 시기에는 우리가 상상 할 수 도 없는 매우 큰 변화가 이루어진다. 배추흰나비의 경우 애벌레 시기에 기어 다니던 꿈틀이 다리 대신 날씬한 6개의 다리가 생기고, 나뭇잎을 먹던 튼튼한 턱 대신 꿀을 빨아먹는 빨대형의 긴 입이 생기며, 아름다운 날개가 만들어진다. 이때 번데기 안에서는 기존의 세포를 모두 녹여서 새로운 세포로 만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몸의 구조를 완전히 새로운 구조와 기능으로 바꾸어 어른벌레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한다.

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곤충처럼 번데기시기를 거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열심히 배운다면 육체적 탈바꿈은 아니더라도 정신적 탈바꿈은 가능하지 않을까.

정종철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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