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닌 대학에서는 신입생이 제2외국어를 반드시 수강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대학입학을 위해 열심히 외운 독일어 문법에 좀 질려 있던 터라,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영산문 강독'이라는 교과목을 발견했습니다. 좀 높은 수준의 영어수업을 들으면 제2외국어 수업을 대체할 수 있다는 작은 글씨로 된 규정을 찾아낸 것이 자못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업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영산문(英散文)들을 읽는 것은 좀 멋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사전에도 안 나오는 단어의 뜻을 받아 적느라 수업을 빠지기 어려웠습니다. 수업 빠지고 당구장과 술집을 전전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1학년 녀석에게는 부담스러웠지요.
그것은 물론 아주 난데없는 일이었습니다. 법이나 사회과학에 대해 거의 천치에 가깝던 제가 보기에도 이 수업에서 주고받을 대화는 아니었습니다. 교수님은 케임브리지대학(이름이 주던 권위라니!)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분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혼자 몽환적인 표정을 짓곤 하셨으니 아주 낭만적이고 세상사 하나도 모르는 분임이 분명했고요. 그건 '법대교수에게 물어봐…'라는 답이 당연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 올리면서 소로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불복종에 대한 그의 열망과, 좌절과, 그리고 오두막에서의 삶을 말이지요. 교수님의 목소리에 뭔가 울컥하는 데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제게 이것은 아주 기묘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질문한 학생은 더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고, 우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그 긴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학생이 왜 소로우의 산문을 두고 시민불복종의 권리를 이야기했는지 알아차렸고, 부끄럽게도 그 날에서야 헌법전문을 처음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도무지 세상일에는 단 한 모금의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 그 노교수님이 그 날 보인 아주 특별한 눈빛을 기억해보곤 합니다. 어리석게도 이제 나이를 꽤 먹어서야, 지독한 낭만주의자가 견뎌야 했을 괴상망측한 세월을 짐작하게 됩니다. 대체 어떻게 버티어냈을까, 조금 궁금해하면서 말입니다.
사람은, 악에 저항하지 않고, 다른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악에 전혀 관여하지도 않고, 선악의 문제에 일체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혹시 내가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살펴보아야만 한다. 내가 올라앉은 그 사람은 나로 인해 자신의 계획을 추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어깨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에게 소박한 삶은 이런 믿음을 실천하는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이의 어깨를 누르면서 살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지킨 것일 테지요. 만약 지금 살아있다면, 남의 어깨에 올라 타 있으면서 어깨 내어준 이를 조롱해대는 사람들에게 소로우는, 그리고 그 때의 노교수님은 뭐라고 하셨을까 혼자 생각해보게 됩니다. 가을이 깊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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