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는 금융회사에 맡긴 돈이 빌려 쓰는 돈보다 많기 때문에 자금잉여 주체라 한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거의 '0 %'로 유지하고 있음에도 가계 저축은 오히려 늘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금리가 낮아지면 저축이 감소하고 소비가 증가한다고 나와 있는 데도 말이다.
'경제의 모든 비밀은 인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가계가 저축을 늘리고 있다.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경제가 구조적으로 '저성장 국면(secular stagnation)' 들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산업에서 초과공급이 존재하고 있다. 정부가 통화 및 재정 정책으로 수요를 충분히 부양할 능력이 줄었기 때문에 공급 측면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산업은 존재하지만 그 산업 내의 기업체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고용 감소를 초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소득이 주수입인 가계가 소비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 자금 부족규모 축소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2008년에는 기업의 자금 부족금액이 국내총생산(GDP)의 9.1%였는데 올해 2분기에는 GDP의 0.9%로 크게 떨어졌다. 한국은행의 자금순환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우리 기업들은 514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가지고 있다.
선진 주요국에서 기업이 자금잉여 주체로 전환된 이유를 한 보고서(*)는 실증분석을 통해 명확히 했다. 우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기업들도 동시에 투자를 줄였다. 다음으로 기업의 과잉투자가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된 만큼,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부채를 줄이고 있다. 이른바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축소)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투자가 가장 부진한 이유는 초저금리에도 기업이 적당한 투자기회를 찾지 못하는 데 있다.
가계도 기업도 금융회사에 맡긴 돈이 빌려 쓴 돈보다 많으면 금융회사는 유가증권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특히 보수적은 은행은 주식보다는 채권을 더 산다. 1998년 이후 일본 기업이 자금잉여 주체로 전환하면서 은행이 채권 매수를 적극 늘렸다. 1998년 일본 은행의 자산 중 채권 비중이 12.6%였으나, 2011년에는 32.4%까지 급등했다. 은행의 채권 매수 확대는 시장금리가 '0%'까지 떨어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고, 2~3년 안에 우리 기업도 자금잉여 주체가 될 것이다. 2008년 이후 이어지고 있는 금리 하락추세는 끝나지 않은 것 같다.
(*) Gruber, Joseph W., and Steven B. Kamin, " The Corporate Glut in the Aftermath of the Global Financial Crisis", Oct. 2015, Boat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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