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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싼 게 비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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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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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낯모르는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곤 합니다. 이런저런 세미나 같은 곳에서 발표를 하거나, 언론에 뭔가 보도되고 나면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 전공분야와 관련, 창업 아이디어가 있는데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면 좋겠냐고 묻거나 투자를 받는 방법을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공부한 학교에 진학하려는 관심을 가진 분들이거나 제 경력과 관련된 진로 선택을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만나는 편인데, 두세 시간씩 질문을 계속하거나, 한번 만난 다음 너무 자주 찾아오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솔직히 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중에 크게 성공하면 팔자 고치게 될 테니 본인이 찾아온 걸 고마워하라고 하신 분마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지금 팔자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겐 드문 일이지만, 변호사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상당한 골칫거리인 모양입니다. 먼 지인이 무료상담을 받으려고 하는 정도는 애교이고, 사건을 맡길 것처럼 여러 법률사무소를 돌아다니면서 법적 지식과 의견을 모으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시간 상담을 한 다음, 무슨 비싼 약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진료비가 높으냐며 화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전문가 비용을 아끼려는 태도는 비단 개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컨설팅회사에 '워크숍'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좋은 관계를 형성할 기회라고 생각했던 컨설팅회사들은, 기업들이 워크숍을 통해 아주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이것이 컨설팅 비용을 아끼려는 묘수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특허법인에 대한 출원료 인하 압력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특허 출원비용은 지난 10여년 오히려 하락해왔고, 그래서 변리사들은 한 건의 특허출원에 쏟는 시간을 어쩔 수 없이 크게 줄였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입니다. 비용이 싸지면 좋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특허의 청구항들이 전략적이지 못해서 기술 보호의 효과가 적다는 평가는 기업과 학계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너무 비용을 적게 투자한 나머지, 특허의 효과마저 줄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의료분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좋은 나라가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만, 최근 몸에 작은 종기가 난 아들을 위해 주변 외과를 검색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일반 외과치료를 감당할 의사는 딱 한 분, 은퇴를 앞둔 노령의 선생님 밖에 없더군요. 그 분 말씀으로는 피부과질환을 치료하는 피부과가 모두 미용중심으로 바뀌어서 이제 피부병을 치료하는 피부과도 동네에 없다고 합니다. 씁쓸했습니다. 우리가 건강보험을 통해 더 싸게 더 싸게 의료서비스를 추구한 결과, 비보험 진료는 넘치고, 진짜 필요한 치료는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꼭 전문가 서비스만 문제인 것도 아닙니다. 다른 이의 경험과 시간을 싸게 얻고자 하는 욕심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이렇게 쉽게 얻는 서비스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의 희생 위에 쌓아 올려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면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욱한 저는 바로 얼마 전에야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원래 값이 싸다가 아니라 물건을 싸다(포장하다)는 말에서 왔다는 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보러 가다 주막에 하룻밤 묵은 선비들에게 인심 좋은 주인이 요깃거리를 싸주면서 한 말이 이 속담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이 속담이, 값싼 것이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별 것 아닌 비지떡일지라도 새벽에 일어나 꽁꽁 싸준 마음을 기억해보라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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