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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아시아] 전관예우에 기울어진 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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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1ㆍ구속)의 전방위 로비 의혹과 함께 법조계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전관예우란 문자 그대로 전관에 대한 예우를 일컫는다. 법관, 검사 등 공직에 있다가 변호사로 개업한 법률상으로는 '공직퇴임변호사'들이 수임한 사건에 대해 수사ㆍ재판기관이 유리한 판단ㆍ판결을 한다는 의미다. 법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공직에 있다 물러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면 유리한 결과를 받아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민의 권리ㆍ의무를 직접 침해하거나 혹은 구제할 수 있는 수사ㆍ재판기관의 업무가 '법률'이 아닌 '관계'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실상 그 존재 자체가 사법 신뢰의 근간을 흔드는 격이다. 이는 법률시장의 높은 문턱이 만들어 낸 기형아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대한민국의 변호사 수는 휴업자 포함 2만1394명이 있다. 변호사업계의 경쟁이 심화되며 '법조 1번지'로 불리우는 서울 서초동에선 '사무실 임대료 내는 것도 버겁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실제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사건 수임 건수는 2011년 2.8건에서 2014년 말 1.9건으로 크게 줄었다.

변호사업계 부익부 빈익빈도 심화되고 있다. 국내 굴지 대형 로펌들의 경우 여전히 신입 변호사들은 세금을 떼고도 다달이 1000만원 안팎 급여가 통장에 꽂힌다. '사(士)'짜 직함은 달았으되 입에 풀칠할 여력은 못 갖춘 전문직들은 영업력이 출중한 '사무장' 등 브로커에 기댄다. 개인 회생ㆍ파산처럼 단가가 낮고 물량(?)이 많은 업무 영역은 이미 대부업체를 낀 사무장들이 변호사 이름만 빌려 영업하는 세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법률 소비자 입장에서 변호사들은 여전히 구름 위의 존재다. 펀드 등 금융상품의 구조가 복잡다단해지면서 리스크관리에 골몰하는 금융투자업계도 법률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상당하다. 대형 증권사나 유관 기관의 경우 수명의 사내 변호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운용자산만 수천억원대인 모 금융투자업체 대표는 담당 업무를 전담할 인력(사내 변호사)이 있느냐는 물음에 "몸값이 비싸서 못 모신다"고 말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중소기업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규 시장 진출 검토를 비롯해 나날이 중요성이 부각되는 지적재산권(IP) 관리 측면에서도 법률 전문가의 조력이 중요하지만 손을 뻗기 힘들다. 하물며 전ㆍ월세 보증금 다툼이나 부당해고당한 비정규직처 근로자처럼 사회적 약자에 이르면 변호사 선임은 선택지 밖으로 한참 밀려난다.

이 와중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사건 하나에 50억원,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검찰을 나가 5년간 수백억원을 벌어들였다고 하니 일반인들은 물론 변호사들도 깜짝 놀라고 있다. 큰 돈을 거머쥘 호기를 목적에 둔 업체 사주가 구속 상태에서 풀려나고픈 욕심에 건넨 돈, 재계 유력인사들이 자신들의 죗값을 축소ㆍ무마하는 대가로 치른 돈이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이른바 전관은 부장급 이상을 지낸 판ㆍ검사, 유효기간은 대개 2년이다. 부장판사, 검사장 따위의 표현은 법적으로는 실상 그가 공직에 머물며 국민이 준 녹으로 먹고 살 때 맡았던 직책일 뿐이다. 검찰청법 및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검사는 검찰총장과 검사, 법관은 대법원장 포함 대법관과 판사 2개 직급만 존재한다.

법원ㆍ검찰은 전관예우 논란이 일 때마다 실체가 없다고 한다. 선ㆍ후배, 동료가 현직에 바글바글한 개업 변호사나, 이들에게 돈 보따리를 싸들고 응큼한 기대를 품은 의뢰인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특별한 대접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차별도 거론된다. 한 현직 판사는 "젊은 판사들은 사건에 전관이 달라붙으면 오히려 형을 올리기도 한다"며 "재판장과 연이 닿아 있다는 늬앙스를 풍기면 더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무릇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이 '관계'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특히나 수사ㆍ재판의 경우 딱 잘라 유죄ㆍ무죄라거나 사법적 판단에 따라 현실적으로 져야 할 책임의 무게(양형)가 어느 정도인지 '완전무결'한 결론이 나오기 어렵다. 정리(情理)에서 비롯한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용역업자들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법률 서비스 공급자와 지갑을 든 수요자의 셈법이 복잡해질수록 사법 자체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진다. 지난해 입법정책포럼이 발표한 여론조사 분석 결과 '변호사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국민 10명 중 7명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변호사가 판ㆍ검사와 접촉하는 것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오히려 수사ㆍ재판 과정에서 의뢰인이 변호인의 조력을 얻을 기회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수임사실을 숨긴 채 '접촉' 이면에 유무형의 영향력 행사나 대가가 따라붙었을 경우, 나아가 결국 처분 결과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게 된 경우다. 그 대가가 '거금'이라면 판ㆍ검사들이 혈세로 쌓은 공적 자산인 공직퇴임변호사들의 지식과 경험이 사법신뢰를 해치고 법률서비스 수혜의 불공평함만 키우는 셈이다.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전관예우'라는 위험요소를 다루는 우리 제도는 느슨하다. 변호사법을 고쳐 공직퇴임변호사가 직전 근무지 관할 사건을 1년 동안 수임하지 못하도록 한 이른바 '전관예우금지법'은 2011년부터 시행됐다. 그마저도 어긴다 한들 형사처벌 대신 변호사단체 자체 징계 대상으로 오를 뿐이어서 실효성에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에 대해 수임제한의 실효성을 끌어올려 '전관예우' 해법을 마련하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앞서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는 공직퇴임변호사의 수임제한 위반을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지난 3월 법무부에 냈다. 최영승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달 참여연대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연 '전관예우 근절을 위한 공개 좌담회'에서 수임제한 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근본적인 치유책은 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차단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형사사건에서 국선변호인 비중을 늘리는 것도 한 방편"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는 아예 판ㆍ검사 정년을 늘려 변호사 개업을 원칙적으로 차단하자는 '평생법관제ㆍ검사제' 방안을 내놨다. 판사의 경우 만70세, 검사의 경우 만65세까지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고, 불가피하게 공직을 떠나려는 경우 변호사 개업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지적에 대해서도 "공익적 필요성이 큰 만큼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서울변회는 나아가 현직 판ㆍ검사가 전화변론 등 공직퇴임변호사와 직무 관련 접촉한 경우 이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공직퇴임변호사의 활동내역 보고 및 선임서 제출 의무를 강화하는 한편 공개가능한 범위에서 누구나 사건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외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ㆍ검찰 청사 내부를 오가다 보면 판사실, 검사실을 찾는 한때 판ㆍ검사였던 이들을 심심찮게 마주친다. 달리 뜻한 바가 있어 다른 길을 택한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공직을 떠나며 '경제적 문제'를 이유로 꼽는다. 한때 그들이 업무공간으로 썼을 자리에 앉은 선ㆍ후배, 동료를 '인사'차 찾았다가 기자와 마주쳤을 때도 왠일이냐 물으면 겸연쩍게 웃으며 "먹고는 살아야지" 한다.

근속 10~20년차 판ㆍ검사의 보수는 수당을 제해도 418~578만원 내외로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한국 40대, 50대 가구 월평균 소득(495~505만원)보다 작지 않다. 공직 울타리 너머 '시장'에서 몸값을 높이는 수단이 '부정'이어야 한다면 판ㆍ검사들은 지갑사정에서도 남다른 눈높이를 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자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 중 한 명인 가인 김병로 선생은 퇴임하며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며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의 힘에 굴복하는 법조인들이 곱씹어 볼만한 말이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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