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람-1992년 오늘 그가 털어놓은 배후…범행후 군납 사업하며 떼돈
당시 안두희에게 증언을 받아낸 이는 민족정기구현회 회장 권중희씨였고 취재진을 동반해 이 사건은 다음날 신문 1면 톱기사로 보도됐다. 보도에 따르면 안두희는 "범행 직후 특무대 영창으로 면회를 온 김창룡으로부터 '안의사 수고했소'라는 칭찬을 들었고 수감 중 술, 고기, 담배 등을 차입 받는 등 특혜를 누렸다"고 했다. 또 안두희는 OSS(CIA의 전신) 소속 모 중령과도 만나 백범 암살에 대한 강한 암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안두희도 범행 직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으며 이후 치하를 받았다고 1992년 9월에 추가 증언했다. 하지만 이 자백에 대해서 안두희는 다시 "권중희 회장이 자신을 가평으로 납치, 구타해 시키는 대로 한 거짓증언"이라고 번복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나마 암살의 배후를 밝히는 데 근접했던 것은 국가가 아닌 권중희 회장 등 개인의 노력 때문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안두희는 이승만 정권에서 권력의 비호를 받았고 이후에는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김구 선생 암살 배후를 조사하고 안두희를 추적하는 것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4ㆍ19혁명 이후에 개인들에 의해 비소로 시작됐다. 2013년 출판된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라는 책에는 안두희를 추적해온 4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4명은 권중희를 비롯해 김용희, 곽태영, 박기서 등이다.
우선 광복군 출신으로 백범살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던 김용희는 1961년 치열한 추격전 끝에 안두희를 붙잡아 사건의 전말을 녹취한 뒤 그를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1965년에는 김제 출신 청년 곽태영이 안두희를 찾아내 중상을 입혔다. 하지만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다. 권중희 회장은 10년 넘는 추적 끝에 1987년 서울 마포구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안두희를 찾아내 응징했고 1992년에는 안두희의 자백을 받아냈다. 결국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인천시 중구 자택에서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사망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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