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십여 년 전 인공신경망을 공부하고, 논문을 쓴 경험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인공지능 신봉자를 양치기소년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기대가, 실제 별거 아니더라는 실망으로 변한 경험이 학계에 자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연구의 전망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반대로 인공지능이 야기할 대규모 실업과 빈부격차에 대한 공포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 상당수의 경영직군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고 있고, 또 이로 인해 인원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업무들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더라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업무는 여전히 인간의 일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작년에 히타치에서 일어난 일은 이런 생각과는 좀 다릅니다. 히타치는 물류센터에 인공지능을 투입했는데, 이 인공지능은 직원들의 업무를 평가하고, 평가결과에 따라 업무를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모범적인 활동을 추출해서 이를 카이젠(일본식 경영개선활동)활동으로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혁신활동도 하는 인공지능인 셈입니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IFTF(Institute For The Future)에서 개발한 iCEO라는 소프트웨어의 소식은 더 흥미롭습니다. 이 소프트웨어는 과제가 정해지면, 사내외의 전문가를 파악해서 업무계약을 체결하고, 업무를 배분하고, 일정을 관리하고, 전문가들의 결과물로부터 최종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합니다. 보고서작성과 같은 업무는 물론이고, 인사관리, 영업 등을 스스로 해내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력채용과 업무분담을 해내는 인공지능소프트웨어들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iCEO는 이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지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중계에서 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알파고가 상식에서 벗어난 매우 초보적인 수를 두자, 중계방송을 하던 이는 그것을 버그라고 생각하고 키득키득 웃습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굳어집니다. 어쩌면 이것이 아주 멀리 보고 두는 한 수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생긴 것이지요. 인공지능 경영자가 우리의 믿음과 매우 다른 판단을 할 때, 예를 들면 회사의 즉각청산을 결정할 때, 우리는 무엇을 좇아야 할까요? 인공지능의 판단? 우리의 믿음? 인공지능이 얼마나 빨리 경영자를 대체할지는 모르지만 가장 먼저 대체될 경영자가 신뢰받지 못하는 폭군들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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