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시기에 세계적인 기업의 태동이 집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업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는 일본 역시 '기업이 자라기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메이지 유신으로 개혁 및 개방을 주도하면서 일본에는 서구 문물이 흘러들었다. 일본인들은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으며, 서양식 춤을 추었다. 이런 모습과 달리 사회문화적으로는 오랜 관습과 유교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농공상의 위계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상업을 경시하는 풍조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고 기업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시부사와 에이치는 메이지 정부에서 재정대신을 지낸 관료 출신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일본 최초로 주식제 은행을 설립했다. 이후 금융, 철도, 해운, 광산, 방직, 철강, 조선, 기계, 전기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일생동안 500여개의 회사를 설립했다. 평생 기업가로 헌신했던 그는 일본이 발전하려면 상업을 경시하고 권력을 중시하는 낡은 풍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상업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일본 대중에게 널리 확산시키고자 전통적 유교사상과 자본주의 정신을 결합해 '논어와 주판'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상업은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한 것이다. 상업은 이상적인 인격에 위배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상적인 인격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즉 공익이 곧 개인의 이익이며 개인의 이익은 공익을 만든다"라고 주장했다. '경영자의 모범'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활동의 의미'를 유교사상에 근거해 제시한 것이다. 이 책도 1916년 출간되자마자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일본 기업가의 교본이 되었다. 그는 일본 기업가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에 대해 '사혼상재(士魂商材)', 즉 '선비'와 같은 절개와 도덕, 그리고 '상인'으로서의 재능과 실용주의 정신을 겸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