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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르네상스를 열자]그리스의 몰락과 日의 부활…韓제조업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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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르네상스를 열자-2]포퓰리즘과 노사분규에 빠진 한국 제조업

[제조업 르네상스를 열자]그리스의 몰락과 日의 부활…韓제조업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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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지난달 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2015 한국-그리스 파트너십 플라자' 행사가 끝나고 그리스 정부 관료가 KOTRA아테네무역관에 면담을 요청했다. 주인공은 라브리 아니디스 그리스 경제개발관광부 투자실장이다. 그리스 고위관료가 먼저 면담을 요청해 온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아니디스 실장은 우리나라가 1997년 경제위기를 극복하게 된 주요 원동력이 외국인투자유치 정책이라고 보고 관련 정책 노하우와 시스템을 물었다. 더불어 한국 기업의 그리스 투자유치에도 KOTRA가 적극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재정위기를 거치며 나라살림이 파탄난 그리스는 1997년 경제위기를 3년 만에 극복한 한국을 모델로 삼고 벤치마킹하고 있다.
남부 유럽의 관문이자 지정학적 요충지인 그리스는 한때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국가였다. 그리스 제조업의 역사는 19세기(무역업ㆍ소형어선제조ㆍ수리업), 20세기 초반(식품ㆍ화학ㆍ담배ㆍ에너지산업), 20세기 중반(석유화학ㆍ상선건조ㆍ건축자재) 등의 시대를 거치면서 발달해 왔다. 그러나 현재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관광과 해운에 의존하는 취약한 경제로 전락했다.

◆그리스 제조업, 역사와 함께 무너지다= 그리스 제조업이 붕괴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남발됐고 ▲무리한 정부 재정지출 확대 ▲잦은 노사분규 ▲주요기업 폐업과 공장의 해외이전 등 악순환이 이어졌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출범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가입으로 기업 경쟁력이 급감해 제조업 기반이 붕괴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 그러면서도 1980년대에는 2~3년 동안 48회에 걸쳐 세율이 변경될 정도로 각종 기업법인세 등을 바꾸고 근로자 최저임금과 각종 수당을 도입하거나 인상했다. 좌파정권과 노조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1982년 공무원 급여의 대폭 인상, 장기 파업, 해고금지 등이 법으로 보장됐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지면서 민간부문에서도 파격적인 임금인상 요구가 심화됐고, 장기간 파업이 이어져 그리스 유력 기업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탈출러시가 진행됐다.
'더 이상의 긴축은 없다'는 공약으로 집권한 급진좌파연합은 여전히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금융통제를 도입하면서 수출입과 유통기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개점휴업으로 많은 소상인이 문을 닫았다.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여전히 청년 실업률은 50%가 넘는다. 2016년에는 알짜배기 국가자산의 헐값 매각과 연금 삭감, 각종 세율 인상 등 더욱 가혹한 조치들이 기다리고 있다.

◆日 조롱하던 韓, 日의 역습에 휘청= 한국 제조업에서 일본은 언제나 극복대상이었다. 2007년 삼성이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 TV 업체로 성장한 이후 일본 제조업은 조롱받았다.

일본은 당시 '내수시장에 안주한 업보'라는 이른바 갈라파고스증후군에 빠져 전자는 물론 조선,철강, 중공업 등 주요 산업에서 위기를 겪었다. 일본의 자존심인 소니 경영진조차 "삼성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우리 정부도 잃어버린 10년이니 20년이니 하던 일본식 장기침체를 겪지 말아야 한다며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하지만 일본은 그동안 노사와 정부가 뼈를 깎는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사업재편을 추진했다. '엔저'로 대변되는 아베노믹스가 겹치면서 일본 제조업은 부활의 신호탄을 쏴 올렸다. 일본의 국민기업인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순이익(2015회계연도 기준 2조2500억엔ㆍ한화 23조2400억원)을 달성했다.

현대기아차 순익의 2배가 넘는다. 1인당 연봉은 현대차(9700만원)가 도요타(8400만원)보다 높은 반면에 연간 자동차 생산 대수는 현대차(29대)가 도요타(93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소니도 지난해 5년 만에 흑자전환했다. 탄탄한 실탄을 확보한 일본 기업들은 해외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연간 인수합병가 사상 처음 10조엔(103조원)을 넘어섰다.

◆그리스의 몰락과 日부활, 韓도 배워야= 한국 제조업은 일본의 과거와 그리스의 현재와 닮은꼴이다. 그리스 제조업의 위기를 가져온 요인들은 모두 한국에 농축돼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 제조업 부활의 전철을 밟지 못하고 있다. 당장 오는 4월 20대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19대 국회 개원 직후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9대 국회가 끝나가는 내내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기업들이 사업재편을 서두르고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이를 지원하는 법안(기업활력제고특별법)은 특혜시비에 휘말려 여야가 합의한 처리시한을 이미 넘겼다.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은 일본에서 1999년부터 제정한 법으로 일본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상태다.

2012년 이후 하락하던 노사분규도 2014년 상승세로 반전했다. 당시 전국에서 111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해 651일간 조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내수점유율 마지노선(40%)이 무너진 것은 수입차의 약진이 주요 원인이지만 노조의 잦은 파업도 발단이 됐다. 현대차노조는 임금단체협상 결렬을 이유로 지난해 4일간 파업을 벌여 1만3000여대, 27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기록했다.

완성차노조의 파업은 500여개 협력 업체에는 더 큰 피해를 안겼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베트남에, 현대기아차가 중국과 멕시코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건립하는 것은 이들 지역이 미국과 중국으로의 수출전진 기지인 데다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 적극적인 투자유치 정책 등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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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방정식 사라진 제조업=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대기업 집중, 수출 중심, 정부 주도의 자원 집중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과 국가경제 영향력을 만들었다.

1970년대 이전에는 1차 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이 가장 높은 28%를 기록했지만, 2012년에는 제조업의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이 31.1%로 확대됐다. 주요 경제지표인 산출액 내 제조업 비중,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 등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상위권이다. 대기업ㆍ수출 산업 중심의 성장은 급속한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지속적 발전과 혁신을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수출 시장점유율이 세계 1위인 품목은 2012년 63개에서 2013년 65개로 소폭 증가했으나 그중 20개 품목에서 중국이 2위를 기록했고 점유율 격차는 5% 이내로 축소됐다.우리나라는 제조업 고용 비중이 높으며 또한 제조업 대부분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이 고용의 88%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위기 상황은 심각하다.

◆韓, 이제는 中 추격이 직격탄= 주력산업은 속속 중국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철강ㆍ정유(2003년), 석유화학(2004년), 자동차ㆍ조선해양(2009년), 스마트폰(2014년 2분기) 순으로 중국에 세계 시장점유율을 추월당했다. 우리가 앞서 있는 디스플레이, 반도체 산업도 중국이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과거 5년간(2008~2013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이 우리나라는 5.6% 수준인데 비해 중국은 29.0%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수년 내 저가 물량경쟁(치킨게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스마트폰의 위기가 한국 제조업 위기의 마지막 시그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별 점유율 순위는 삼성(24.8%), 애플(17.5%), 화웨이(8.4%), 샤오미(5.6%), 레노버(5.4%), LG(5.3%) 등이다. 화웨이, 샤오미, 레노버 등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 합계는 40%에 육박한다.

올해는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 합계가 45%에 달해 삼성(22.2%)ㆍ애플(16.8%) 점유율 합계(39%)를 처음으로 추월하게 된다. 그리스 제조업의 소멸을 지켜본 박기원 KOTRA 아네테무역관장은 "우리나라 제조업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제조업이 소멸돼 노동자가 거리에 내몰리고 정부는 자산을 팔아서 부족한 세수를 보전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다다르지 않도록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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