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존재'에 대한 사색…'푸른그림자' 한애규展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바닥에 반짝 거리는 푸른 그림자. 사람이다. 어떤 건 상체가 세워져 있다. 기둥에 드리워진 것처럼. 흙으로 빚어 바다색을 입힌 그림자는 존재를 이야기한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그림자를 갖는다.
"그 바다와 그림자에 대한 기억은 하도 강렬하여
내가 뭍으로 돌아와 거리를 헤맬 때도
바다 물결이 출렁이던 곳, 흔들리던 푸른 그림자가 나를 따라다닌다.
그 그림자가 도시의 회색 벽에, 시멘트 계단에, 내 작업실 입구에,
사방에 드리워져 내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여성 조각가 한애규(62) 작가의 글귀다. 테라코타(terra cotta) 여인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푸른빛 신작들을 선보였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대상화한 듯한 푸른 그림자들. 그림자를 의자 삼아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바다의 푸르름이 넘실댄다. 전시장 벽 한켠엔 시장에서 막 사온 오징어를 묘사한 작품이 걸려 있다. 맞은편에는 듬직한 여인상이 있다.
개인전을 연 한애규 작가를 최근 만났다. 40년 동안 흙을 만지고 살아온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10여년 간 달라진 작업들을 소개했다. 2001년부터 여행을 하게 되면서 작품이 조금씩 변화를 갖게 됐다고 한다. 작가는 "가족 중 누군가를 잃고 난 후 부터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녔다. 그 이후 강한 눈빛의 여인상의 표정이 고개를 숙인 숙연한 모습으로 변했다. 몸이 좀 아파 작은 작품을 해보려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큰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림자 색을 바다 빛으로 표현한 것은 여행에서의 기억과 연관돼 있다. "푸른색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 외로움이나 사색 같은 걸 연상케 한다." 작가의 작품에 물이 소재로 등장한 건 1993년부터다. 흙이 그러하듯 물 역시 생명이 나고 자라는 근원이다. 물을 배경으로 배가 불룩한 여인을 묘사한 부조 작품에서 새로운 생명의 잉태와 근원적인 물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배탈인 줄 알고 지사제로 버텼는데…알고 보니 30...
긴 세월동안 빚어내고 있는 작가 특유의 풍만한 여인상은 여전히 그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여인상 작업을 시작할 때 남성 작가들의 여인상과는 다른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임신한 여인상에선 세상의 인류를 낳는 여성의 대단함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한애규 작가의 작품은 자기 고백적이다. 오랫동안 여행과 독서를 통해 얻은 경험과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작품만큼이나 오래된 글쓰기는 서로 얽히고설켜 그물망처럼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루고 있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고 삶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앞서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일상의 체험과 어우러져 있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 02-2725-1020.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