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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리더십]'김효은 키즈' 탄생시킨 의전실 첫 여성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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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멀티플레이어' 김효은 글로벌녹색성장기구 기획정책국장
국가원수 방한땐 男경호원들과 밤샘 노가다
외교관은 냉탕·온탕을 가리지 않는다
여자라고 열외없다며 외무고시 붙자 車사준 아버지 그 덕에 야근 밥먹듯
'말빨' 먹히는 선진국 부럽기도…높아진 한국 위상에 일할 맛나


김효은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기획정책국장은 "큰 세상을 향해 도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하지만 용기는 자꾸 도전을 해야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김효은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기획정책국장은 "큰 세상을 향해 도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하지만 용기는 자꾸 도전을 해야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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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흔히 외교관하면 화려한 파티와 이국적인 풍물을 마음껏 즐기는 직업인으로 생각한다. 좀 양보하더라도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회의에서 국제적인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해 글로벌 인맥을 탄탄히 다져나가는 멋진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국제연합(UN),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양한 국제기구의 업무를 담당하며 23년째 다자외교 전문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김효은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기획정책국장은 "애국심과 사명감 없이는 해낼 수 없는 격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는 말이 있듯이 국제협상에서는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실현시키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 때문에 외교무대가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불린다"면서 "외교관이 국가대표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마음을 정해라. 그러면 길이 보인다."
김 국장이 처음부터 외교관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대학 1학년 때 외무고시 설명회에 갔다가 엄청난 참석 학생수와 방대한 공부양에 질려서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하나를 힘들겠다고 포기하니 다른 것도 하기 어려워졌고 사회에 나가 뭘 해야 할 지 길이 보이지 않아 대학 생활 내내 고민만 했었다"면서 "결국 돌고 돌아 여성으로서 소신을 펼칠 수 있는 직업이 외교관이라는 생각에 4학년 2학기가 돼서야 외시를 보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실제 1990년 그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는 여성 대졸자를 받아주는 국내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혹 공채를 뽑더라도 나이제한이 엄격해 졸업하고 한두 해만 지나도 응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직은 시험만 붙으면 가능했기 때문에 남녀차별이 그나마 적어 여성이라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는 판단이 섰다.

김 국장은 "시작이 반이다란 말 절대 틀린 게 아니다"면서 "막상 마음을 정하고 시작하니 어떻게 가야할 지 길이 보이더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하고 나면 이를 주변에 적극 알리라고 강조했다. 절대로 혼자서 하지 말란 얘기다.

김 국장은 "떨어지면 창피하다는 생각에 세상과 동떨어져 공부하다가 합격하면 짠하고 등장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절대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서 "시험을 보겠다고 알리면 가족, 교수, 선배는 물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까지 도와주겠다는 사림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같이 공부했던 스터디그룹의 친구들이 현재 모두 외교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유 있는' 아버지의 취직 선물

김 국장이 1992년 외무고시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첫 선물로 자동차를 사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과한 선물에 김 국장이 놀라자 아버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야근 있는 날 상사가 "여자니까 일찍 들어가라고 하면 차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대답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김 국장도 공무원은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달랐다. 기본적으로 업무 자체가 해외 여러나라와 진행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시차가 다르다는 얘기다. 결국 거의 24시간 업무가 돌아가게 돼 일찍 퇴근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일찌감치 이를 헤아린 아버지의 혜안이 담긴 선물이었다는 의미다.

김 국장은 "실제 그렇게 대답하며 야근을 도맡아 했고 결국 여성직원으로서가 아니라 한 부하직원으로서 상사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면서 "밤늦게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빠 덕분(이라 쓰고 '때문'이라 읽는다)"이라며 웃었다.

◆"성별 의식말고 자신이 신(新)문화를 만들라"

김 국장은 자신이 여자라는 걸 의식하지 마라고 강조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남녀 구분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동료가 남자라는 것도 의식할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지금도 남성 중심의 문화가 남아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도 인정했다. 하지만 이를 주류(主流)라고 인식하지 말고 적응하기 보단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히 스스로 고쳐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김 국장은 "이미 만들어진 문화나 질서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며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본인 스스로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과거 외교무대에서는 한국도 선진국들이 구축해놓은 질서에 따라가는 것만이 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사회가 모두 한국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어떻게 하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갈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단계가 됐다는 설명이다.

김 국장이 현재 몸담고 있는 국제기구 글로벌녹색성장기구가 이를 실증하고 있다. 지난 2012년 한국 주도로 설립된 이곳의 회원국은 벌써 24개국이다. 최근에는 국제기구 가입을 꺼리는 선진국들도 한국이 만든 단체라는 이유에 가입했고 개도국들도 한국의 녹색성장을 가르쳐달라며 너도나도 방문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갖고 도전하라"

김 국장이 외교관이라는 업무를 처음 시작할 당시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선진국 외교관'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국제회의장에서의 선진국 파워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시쳇말로 선진국 외교관의 '말빨'이 먹히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면서 "당시에는 한국 같은 약소국가의 외교관들을 껴주지 않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엄청나게 높아졌는데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은 정작 우리 자신"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외교관이나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을 선망하지만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다. 그가 2권의 책을 써 낸 이유도 후배들이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해서다.

김 국장은 2008년 '외교관은 국가대표 멀티플레이어'라는 책에서 "외교관은 냉탕, 온탕을 가리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다. 당시 온탕은 모두가 희망하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같은 선진국 근무였고, 냉탕은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 근무를 일컬었다. 의전실 최초의 여성외교관인 김 국장의 선언에 외교부에서는 의전실을 희망하는 여자 후배들이 늘어나는 등 소위 '김효은 키즈'까지 나타나게 됐다. 의전실은 외국 국가원수가 방한하면 경호실의 억센 남성들과 부대껴 가며 밤샘도 해야 하는 부서라 외교부에선 '노가다'로 불리는 곳이다.

김 국장은 이에 대해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아직도 '한국'이라는 틀에 얽매여 있는데 자신의 가치, 한국인으로서의 가치는 목표의 틀을 크게 잡을수록 커진다"면서 "큰 세상을 향해 도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하지만 용기는 자꾸 도전을 해야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she is…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워싱턴대 국제관계학 석사 ▲26회 외무고시 합격 ▲여성 외교관 첫 의전실 근무 ▲유엔대표부 2등 서기관 ▲루마니아대사관 1등 서기관 ▲2005 부산 APEC 회의 실무 총괄 ▲2006 APEC 예산 운영위원회 의장 ▲외교부 세계무역기구(WTO) 과장 ▲외교부 기후변화협상팀 과장 ▲주OECD 대표부 참사관 ▲OECD 무역환경공동회의 부의장 ▲현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기획정책국장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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