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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經을 새김…이철수 신작전

최종수정 2016.02.19 13:53 기사입력 2015.10.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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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대종경' 읽으며 얻은 감흥, 3년간 목판으로 옮겨

이철수 작가

이철수 작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목판화가 이철수(61)가 4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민중미술 장르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인물로서, 한국 현대사와 호흡을 같이 해온 우리 시대의 판화작가로 통한다. 지난 30여 년간 삶에 대한 통찰과 생명 본질에 대한 관심을 판화에 담아왔다. 판화 속 그림과 글은 단순하면서도 정겹고 따뜻하며 때론 진지하고 초월적이기까지 하다.

오랜만에 여는 신작전의 주제는 내년 5월 100주년을 맞는 원불교의 대표 경전 '대종경'이다. 무려 3년 동안 '대종경 목판 경전'을 만드는 데 매진해온 그가 소개할 작품은 205점이나 된다. 전시를 앞둔 지난 15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지하 한식당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는 "5년 전 원불교 측으로부터 목판 경전을 제안 받았다. 1년 반 동안은 경전을 읽는 데만 시간을 할애했다. 3년 전부터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목판만 만들었다. 밑그림으로는 300점이 넘는데, 총 200여점으로 압축했다"고 했다.

이철수의 판화 작품에서는 시정이 넘치는 짧은 글과 전통적인 도상이 어우러진다. 그래서 '판화로 시를 쓴다'는 평을 듣는다. 차분하게 시선을 머무르게 하며, 깨달음을 주는 작품의 아우라는 '선불교적'이라는 느낌도 준다. 그런 그가 최근 몇 년간 원불교와 인연을 맺고, 이렇게 목판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교주인 소태산이란 분이 자력으로 득도해 일궈낸 원불교는 한국 땅에서 태어난 민족종교다. 조선조 말 민족종교들이 꽤 있었지만 원불교처럼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아 4대 종단 중 하나로 인정받는 곳은 없다"며 "원불교 경전을 청소년기 때 읽어보긴 했지만 많이 잊고 있었다. 30여년 만에 참 소중한 지혜서를 다시 만났다고 생각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제자들에게 남긴 언행들로 이뤄진 대종경은 깊고 넓은 지혜를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쉽게 읽히는 경전이다. 이를 수십번을 읽었다"고 했다.

이철수 대종경 연작판화 '봄바람'

이철수 대종경 연작판화 '봄바람'


이철수 작, '탐진치'

이철수 작, '탐진치'


이철수 작, '사람들은'

이철수 작, '사람들은'


이철수 작 '개싸움'

이철수 작 '개싸움'


작가는 그렇게 대종경을 공부하며 얻은 깨달음과 감흥을 목판화로 표현했다. 특히 경전 속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도는 큰 도이고, 소수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작은 도다"라는 대목이 크게 마음을 흔들었다고 했다. 원불교가 제시하는 이야기는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수행 공부만 매진하는데 칭찬하지 않고, 도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일상에서도 본받을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와 같은 가르침도 크게 다가왔다. 작가는 "현대인들은 자신 밖에서 요구하는 기대와 성공과 같은 압력에 찌들고 지쳐 있다. 더욱이 스스로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안간힘으로 애쓰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지혜들을 접하면서, 각자의 깊은 마음 한켠에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내 그림을 통해 원불교를 홍보하자기 보다는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지혜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충북 제천에서 아내와 함께 30여년을 자급자족형으로 농사를 짓고, 판화를 새기고 책을 읽으며 살고 있다. 작가는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똑같다. '공기 좋은 곳에서 조용히 살아 마음 편할것 같다는…' 그런데 어디든 사람사는 곳은 똑같다. 서로에게 스트레스와 마음의 상처를 주고 받는다. 내 생각엔 어디든 자유롭진 않다. 다만 에고를 넘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신작 목판들에는 대종경 경전말씀이 작은따옴표(' ')로, 작가의 생각이 옆줄(-)로 구분돼 적혀 있다. 글귀와 연결되는 그림들은 간결한 선과 작은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전시회 제목은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다. '봄바람'이라는 그림으로 이 이야기를 형상화한 그는 "'봄마다 꽃이 핀다'. 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고 귀한 소식이든가. 하지만 이토록 귀한 소식을 사람들은 듣지 못한다. 반쯤 죽어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좋은 바람이라도 살아 있어야 느낄 수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살아 있는 나무라야 피워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시와 함께 같은 제목으로 도록을 겸한 단행본(문학동네, 3만8000원)도 제작했다. 단행본에는 별지로 마련된 판화 석 점과 원불교 정전(正典)과 대종경 속 법문을 구현해낸 판화 200점이 수록됐다. 광고인이자 작가인 박웅현씨(54)는 책 해설에서 이철수 판화의 가장 큰 매력은 '쾌도난마', 촌철살인의 아찔함에 있다고 했다. 단아하고 담백한 화풍, 여백의 여운에 무심히 빠져 있다보면 어느새 뒷머리가 선뜩해지며 무언가를 깨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철수 판화 속 선문답식 글귀들은 자주 느낌표로 마무리되곤 하는데, 그 올곧은 직선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도 단단하고 굳은 심이 박히는 듯하다.

전시는 오는 21일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을 시작으로 대구(봉산문화회관), 광주(대동갤러리), 익산(예술의전당), 부산(부산문화회관)에서 순회전을 거쳐 내년 1월 14일 대전 예술가의 집 1ㆍ2ㆍ7ㆍ8전시실에서 막을 내린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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