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종경' 읽으며 얻은 감흥, 3년간 목판으로 옮겨
오랜만에 여는 신작전의 주제는 내년 5월 100주년을 맞는 원불교의 대표 경전 '대종경'이다. 무려 3년 동안 '대종경 목판 경전'을 만드는 데 매진해온 그가 소개할 작품은 205점이나 된다. 전시를 앞둔 지난 15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지하 한식당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는 "5년 전 원불교 측으로부터 목판 경전을 제안 받았다. 1년 반 동안은 경전을 읽는 데만 시간을 할애했다. 3년 전부터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목판만 만들었다. 밑그림으로는 300점이 넘는데, 총 200여점으로 압축했다"고 했다.
작가는 그렇게 대종경을 공부하며 얻은 깨달음과 감흥을 목판화로 표현했다. 특히 경전 속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도는 큰 도이고, 소수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작은 도다"라는 대목이 크게 마음을 흔들었다고 했다. 원불교가 제시하는 이야기는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수행 공부만 매진하는데 칭찬하지 않고, 도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일상에서도 본받을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와 같은 가르침도 크게 다가왔다. 작가는 "현대인들은 자신 밖에서 요구하는 기대와 성공과 같은 압력에 찌들고 지쳐 있다. 더욱이 스스로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안간힘으로 애쓰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지혜들을 접하면서, 각자의 깊은 마음 한켠에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내 그림을 통해 원불교를 홍보하자기 보다는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지혜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충북 제천에서 아내와 함께 30여년을 자급자족형으로 농사를 짓고, 판화를 새기고 책을 읽으며 살고 있다. 작가는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똑같다. '공기 좋은 곳에서 조용히 살아 마음 편할것 같다는…' 그런데 어디든 사람사는 곳은 똑같다. 서로에게 스트레스와 마음의 상처를 주고 받는다. 내 생각엔 어디든 자유롭진 않다. 다만 에고를 넘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시와 함께 같은 제목으로 도록을 겸한 단행본(문학동네, 3만8000원)도 제작했다. 단행본에는 별지로 마련된 판화 석 점과 원불교 정전(正典)과 대종경 속 법문을 구현해낸 판화 200점이 수록됐다. 광고인이자 작가인 박웅현씨(54)는 책 해설에서 이철수 판화의 가장 큰 매력은 '쾌도난마', 촌철살인의 아찔함에 있다고 했다. 단아하고 담백한 화풍, 여백의 여운에 무심히 빠져 있다보면 어느새 뒷머리가 선뜩해지며 무언가를 깨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철수 판화 속 선문답식 글귀들은 자주 느낌표로 마무리되곤 하는데, 그 올곧은 직선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도 단단하고 굳은 심이 박히는 듯하다.
전시는 오는 21일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을 시작으로 대구(봉산문화회관), 광주(대동갤러리), 익산(예술의전당), 부산(부산문화회관)에서 순회전을 거쳐 내년 1월 14일 대전 예술가의 집 1ㆍ2ㆍ7ㆍ8전시실에서 막을 내린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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