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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작업실의 담배 DIY, 즐거운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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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부터 제조까지…관람객이 직접 볼 수 있도록 작업실 공개
담뱃값 인상·금연정책 이어지자 새로운 방식의 저항방식 고민
비판적 관점 제시하면서도 작업으로 유쾌한 대안문화 표현

김소철 작가

김소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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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한 주택가 골목 안. 유쾌한 반란은 이곳에 있는 작은 작업실에서 시작됐다. 끽연자 열두 명이 지난 2월부터 이곳에 모여 직접 담배를 재배하고 제조했다. 이제는 아예 작업실을 공개해 버렸다. 낡은 건물 2층 열 평 남짓한 작업실엔 담배제조과정을 알려주는 책자와 동영상 그리고 제조 도구들을 준비했다. 작업실과 계단으로 이어진 옥상에는 사람 키 만한 담배 포기들이 분홍빛 꽃을 피웠다. 서른 포기 넘게 옥상을 가득 메운 담배는 황색종과 버얼리 두 종이다.

작업실의 주인은 작가 김소철(32)이다. 그는 지인과 이웃사촌을 끌어들여 '내 손으로 담배 만들기'를 주도했다. 미술의 영역이 더 이상 캔버스와 물감만을 재료로 하지 않듯, 작가는 이를 확장해 작업실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게 했다. 작업실 안의 담배나무와 여러 사물은 설치작품이, 지난 반 년 동안의 실험은 작업 과정이 됐다. 그는 내년까지 이 프로젝트를 끌고 나갈 작정이다.
지난 19일 작업실을 찾아갔다. 김소철은 이곳을 '염리동 담배센터'라고 했다. 올해 초 서울역 근처 오래된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담배를 키우고 만들어 볼 생각으로 고른 집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그는 "담뱃세 인상과 금연정책이 이어지면서 심리적으로 흡연은 죄책감이 들게 하는 행위가 된 것 같다. 흡연자는 나쁜 사람, 비흡연자는 깨끗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각인시키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흡연자들에겐 어떤 대안이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고 했다.

담배 프로젝트는 단순히 흡연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문제나 제도에 맞선 '저항'의 새로운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누군가가 희생하고 상대편과 대립하는 모습이 아닌, 유연한 연대로 즐겁게 저항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며 "흡연자들이 취미나 놀이처럼 직접 담배를 만들어 피우는 것 자체가 담배관련 기업의 수익이나 정부 세수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겠지만 담뱃세와 관련 정책을 견제하는 작은 움직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담뱃세 인상에 대해 작가는 "시중의 담배값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담배의 경우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들이 더 많이 피운다는 통계가 있고, 그렇다면 그 세금 부담 역시 그들의 몫이 크다. 부자세는 감면하면서 왜 담뱃세는 인상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 또한 담뱃세가 흡연자를 위한 용도로 쓰이고 있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김소철 작가의 작업실 겸 워크숍 공간

김소철 작가의 작업실 겸 워크숍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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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담배 제조' 워크숍 한 장면

'직접 담배 제조' 워크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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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파종 영상 스틸

담배 파종 영상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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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제조 도구들. 오븐접시, 온도계, 담배 튜브 및 튜빙기, 저울 등

담배 제조 도구들. 오븐접시, 온도계, 담배 튜브 및 튜빙기, 저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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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직접 키워서 만들어 피우는 일. "혹시 법적으로 문제는 없느냐"고 물었다. 작가는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다. 규정상 담배공급회사가 아닌 개인이 담배를 양도하거나 판매하면 안 되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 규정 역시 모호하다. 여기서 '담배'가 모종부터인지, 다 큰 담뱃잎부터인지, 완성된 담배인지 애매하다. 설령 이번 전시를 통해 문제가 돼 더 구체적인 규제들이 생긴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과정 역시 담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작업은 특이하고, 유희적이지만 작가의 이야기처럼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안에는 취미와 즐거운 저항이란 코드가 잠복했다. 김소철은 "관람객들에게 '담배를 직접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가능성만 전달돼도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어떤 경계가 허물어지며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데 만족한다"며 "취미활동으로 직접 담배를 재배하고 제조하면 처음 투자비용만 제외하고 한 해에 수십만 원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파종과 옮겨심기, 작물 돌보기, 잡초제거와 비료주기, 담뱃잎 수확하기, 담배 숙성시키기, 입맛에 맛는 담배 레시피 만들기 등 열 가지가 넘는 과정에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작가는 "반년 넘는 동안 실험을 통해 담뱃잎을 오븐에 덖을 때의 적당한 온도를 찾고 목 넘김과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럼주와 당밀을 혼합하는 등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그가 담배를 직접 만들기 위해 활용한 자료들이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것인데, 1948년 영국의 한 신부가 교회의 깨진 창을 고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려고 시작한 담배 협동조합의 안내서였다. 작가는 이것을 번역해 책자로, 담배 제조과정을 10여 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냈다.

이처럼 일상에 대한 낯선 시선과 비판적 관점을 던지면서도, 유쾌한 대안 문화를 작업으로 풀어내며 타인과 교감하는 것이 예술가로서 김소철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는 학부시절 미국의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귀국해 지난 2012년 서울대 서양화과 판화전공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판화'가 사회운동적인 성향을 지닌 화가들을 많이 배출한 장르라는 점에서도, 그가 작업을 통해 주변의 작은 변화들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김소철이 그동안 해온 작업들 중에는 이번 프로젝트만큼이나 독특한 사례가 많다. 지난 2013년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에 대한 의문을 기반으로, 속옷만 입은 배우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정해진 구간을 달리는 시위 퍼포먼스와 영상작업을 한 적이 있다. 2011년에는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를 통하여 동상의 의미와 상징들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참여형 예술작업을 지향하는 그는 이번에도 관람객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열어뒀다. 오는 10월 11일까지 이어질 전시기간 동안 그의 작업실에서는 토요일과 월요일에 관련 워크숍이 진행된다. 관심이 있다면 서울지하철 6호선 대흥역에서 내린 다음 마포구 치매예방센터를 찾아 인근 마포아트센터 방향으로 골목길을 뒤져보라. 그러다 보면 표식으로 작가의 작업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valere@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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