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을 훌쩍 넘긴 박정수(남·가명)씨는 수년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서 소규모 대부업을 시작했다. 은행 퇴직 후 여러 가지 '인생2모작'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돈만 까먹다가 결국은 돌고 돌아 익숙한 금융에 안착한 것이다. 처음에는 "고객 관리만 잘 하면 되겠지"라고 단단히 결심했지만 인생2모작에 나선 은퇴자들이 그렇듯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치킨집이나 이동통신사 매장을 오픈했다가 말아 먹었다는 주변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대부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운영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박씨도 열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없이 혼자 일한다. 그는 "지금은 손님이 뚝 끊겼지만 전에는 하루에 2~3명이 입소문을 타고 찾아왔다"며 "고객들은 성별과 나이가 천차만별이지만 저신용에 급전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담보대출을 위주로 영업하며 금리는 연 24%를 받는다. 그는 "우리 같은 (은퇴) 대부업자들은 독종이 아니어서 대형 대부업체들보다는 이자가 낮은 편"이라고 귀띔하면서도 대부업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문을 닫으라는 얘기지"라며 손사래를 쳤다.
최근 금융당국은 대부업의 최고금리를 29.9%로 낮추면서 방송광고도 제한하기로 했다. 게다가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박씨처럼 소규모 대부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개인 등록 대부업체는 지난해 말 7016곳으로 전년대비 604곳이 줄었다. 규모가 큰 법인 등록 대부업체가 같은 기간 1678개로 전년대비 28개밖에 줄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부업은 저신용자들에게는 제도권에 있는 마지막 금융 안전망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업황은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박씨의 우려다. '그만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지만 당장 문을 닫기가 쉽지 않다. 회수해야 할 돈도 남아 있고 가족들도 신경이 쓰인다. 박씨는 "폐업을 할까 고민 중이지만 올해는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이다. 이 일이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니 잘 마무리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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