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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이거나 사실적이거나

최종수정 2015.07.20 11:56 기사입력 2015.07.19 11:36

두 여성작가가 담아낸 사각프레임 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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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정부는 사진 발명을 공식 선포하고 발명가인 루이 쟈크 망데 다게르의 특허권을 인정했다. 사진이 세상 속으로, 아니 세상이 사진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후 수많은 사진작가가 나왔다. 당시 카메라는 크고 무거워 여성이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여성들은 소형 카메라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 한 여성이 사진의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긴다. 줄리아 마가렛 카메룬. 자연주의 화풍과 낭만주의 문학이 꽃을 피운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 시대가 낳은 인물이다. 카메룬의 사진은 기술적으로 미숙했으나 여성스러운 감각이 어우러져 우아하고 개성 있는 인물 사진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 사진가들의 활동은 20세기 들어 활발해진다. 이들은 사진 클럽에 가입해 회화를 모방한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다. 이를 '살롱 사진'이라고 한다. 미국에 대공황이 닥친 뒤에는 미학이나 예술성을 초월해 현실지향적인 사진들이 등장한다. 여성 사진가 도로시아 랭은 이민자와 민중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근대사진 역사에 변곡점을 만들었다. 20세기를 얼룩지게 한 전쟁과 정치적 소용돌이,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도 여성 사진가들의 예술혼은 꺾이지 않았다. 남성 사진가들이 빠르게 발달하는 물질문명에 반응해 마천루와 기차, 자동차를 찍은 반면 여성 사진가들은 현실의 이면과 그림자에 관심을 돌려 골목길과 아이들, 소소한 삶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오늘날 사진은 일반인에게도 보편화된 매체다. 사진 세계는 '남성'과 '작가' 위주에서 '여성'과 '아마추어'에게 문을 열었다. 특히 여성 사진가와 관련,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는가 하면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수께끼 같은 인물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발표됐고 수중 예술 사진의 대가로 알려진 제나 할러웨이의 전시가 열렸다.

제나 할러웨이, '천사', '스완 송(Swan Song)' 시리즈, 2005년

제나 할러웨이, '만남', '물의 아이들' 시리즈, 2005~2007년 작 중 일부.


제나 할러웨이의 수중 예술사진
非夢似夢.…물 만난 인어공주
물의 아이들, 백조의 마지막 모습 물 속 연출…아시아 첫 전시 9월 7일까지
◆마법 같은 수중 속 예술사진 = 세계 최초의 여성 수중 사진작가 제나 할러웨이(42). 엄밀히 말하면 수중에서 연출된 장면을 찍는 사진작가다. 그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아시아 최초로 전시를 열었다. 할러웨이의 사진들은 동화 '인어공주'의 장면이 현실로 다가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모델, 메이크업 아티스트, 의상 디자이너 등 스태프(20~30명)와 협업해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물속에 머무르는 시간만 길게는 여덟 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영국 작가 할러웨이는 수십년을 유수 잡지의 화보에 싣는 상업사진가로 활동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 찰스 사치(72)가 그의 비디오 시리즈 작품 가운데 하나인 '스완 송'을 사들이면서, 예술사진가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스완 송은 죽기 전 단 한번 구슬프게 울고 죽는다는 백조를 떠올리면서 수중 사진으로 이미지화한 작업이다.

할러웨이를 지난 10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사람이라면 으레 수중 사진 찍기에 도전하지만 어떻게 연출 사진을 찍겠다는 발상을 했는지 궁금했다. 할러웨이는 "어릴 때부터 수영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겼다. 열여덟 살에 이집트에 있을 때 어머니가 수중카메라를 선물했는데, 자연물보다는 사람을 찍는데 관심이 컸다. 인물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오히려 기회라 생각했다"고 했다. 수중 사진에 대해 "당시만 해도 이 분야에는 가르쳐줄 사람도, 보고 배울 책도 없었기에 독학으로 수중사진을 익혔다. 그 경험이 오히려 내 스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할러웨이는 스무살 무렵 수중사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런던으로 갔다. 그러나 상업 사진가로 데뷔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선 많이 부정적이었다. 의뢰인을 찾기도 매우 어려웠다. 그러다 한 여성이 나의 사진을 원했고, 이후 화장품 회사에서 의뢰를 받기 시작하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다"며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해 매우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할 수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작가는 상업사진가로 활약하면서 수중연출 사진에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거장으로 성장했다. 그를 닮아가려는 후배 작가들까지 생겼다. 미술계에서도 사진예술을 주목하면서 또한 할러웨이의 작품을 눈여겨본다. 작가는 "웹상에서 많은 정보가 교류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사진이 돈을 주고 판매되는 예술작품이 됐다. 20년전만 해도 사진은 예술로 취급되지 않았던 상황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라고 했다.

존경하는 여성 사진가가 있는지 물었다. 할러웨이는 "같은 수중사진가는 아니지만 사진에 스토리텔링을 더하는 식 하비를 좋아한다. 매우 똑똑하고 지적이다"라고 했다. 물 속이라는 물리적, 기법적 난관에도 여성, 어린이, 개, 말, 수달, 오리 등 다양한 생명체를 촬영하며 찍은 19세기 소설가 찰스 킹즐리의 '물의 아이들'을 모티브로 한 시리즈, 남성 인어를 소재로 한 작품 등 할러웨이의 작품 속에도 풍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수중 작업을 할 때 머리카락이 상하지 않도록 바셀린 한 통을 바른다는 할러웨이.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지면서 즐겁게 일하는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열정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헤쳐 나가라.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꿋꿋하게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비안 마이어, 자화상, 제작년도 미상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비바안 마이어, 제작년도 미상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비비안 마이어의 스냅
보모로 일하며 주변 모습 담아…죽기 2년 전 경매로 작품 알려져
국내선 첫 공개...9월 20까지


◆ 베일에 싸인 고독한 사진가 = 비비안 마이어(1926~2009년)의 삶은 수수께끼와도 같다. 보모로 일하면서 아마추어로서 틈틈히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일상을 기록한 그의 사진은 특별한 정서를 자아낸다. 마이어의 사진이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마이어는 뉴욕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1951년에 뉴욕으로 돌아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56년부터 시카고에 정착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모일을 해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쉬는 시간에 거리, 사람, 사물, 풍경을 찍었다. 불쑥 마주친 대상들, 따분한 현실의 틈새, 일상의 아름다움을 필름에 담았다. 또한 작가는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대상이 됐다. 셀피(self-photography)의 원조라고 할 만큼, 자신의 모습을 그림자나 거울 놀이를 통해 사진 곳곳에 숨겼다. 전시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30년 동안 순수한 호기심으로 타인의 인생을 몰래 엿보듯 은밀하게 촬영한 마이어의 사진 필름은 15만 롤이 넘는다.

마이어는 생전에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우연히 세상의 빛을 보았다. 마이어는 자신의 소지품과 필름을 대부분 창고에 보관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7년, 보관료가 연체되자 창고가 압류되었다. 역사 자료 수집가인 존 말루프가 경매장에 나온 마이어의 작품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제작해 의문에 싸인 마이어의 삶과 작품들을 조명했다. 암스테르담, 베를린, 런던, 오슬로, 뉴욕, 로스엔젤레스, 부다페스트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마이어의 사진전이 이어졌다.

미술계가 마이어의 사진을 주목하는 까닭은, 차별화된 작품성 때문이다. 거리를 극장으로, 사진을 수단으로 삼은 마이어의 작품에는 일상 속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이 배어있다.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 전시된 마이어의 사진 속 인물의 표정과 태도, 옷차림, 유행했던 액세서리, 소외계층의 삶에는 미국 경제의 발전 속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진동선 사진평론가(58)는 "마이어는 사진을 찍는 것보다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는 '늦게 젖혀진 커튼'이다. 사진계가 오랫동안 프로 중심으로 흘러가다 사진이 일상화되면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스토리텔링이 담긴 사진들에 관심을 쏟고 있다"며 "디지털 사진문화가 생긴지 10년쯤 된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제2의 비비안 마이어가 나타날 수 있을 거라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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